한국에는 산성이 유난히 많습니다. 중국은 성곽이 곧 도시였고 일본은 성이 지배자의 거처였는데, 이 땅은 평지에 마을이 있고 뒷산에 성이 따로 있는 이중 구조였습니다. 적이 오면 마을을 비우고 산으로 올라가 버텼습니다. 그래서 산마다 성이 있고, 그 성들은 나라의 국경이 어디까지 밀리고 밀렸는지를 화석처럼 남기고 있습니다. 이 지도는 고구려·백제·신라·가야·발해의 성곽 155곳을 만주와 한반도 지도 한 장에 놓은 것입니다.
성마다 네 가지로 나눠 찍었습니다. 한 나라의 성으로 확실하고 빼앗긴 기록이 없는 곳은 나라 색 한 가지로, 주인이 바뀐 곳은 점 자체를 나라 색 조각으로 갈라서, 이름은 유명한데 자리가 논쟁 중인 곳은 통설 자리 하나에 점선 테두리로, 자리는 확실한데 누가 처음 쌓았는지 논쟁 중인 곳은 회색 테두리로. 안시성이 세 번째 경우입니다. 645년 당 태종이 88일을 포위하고도 넘지 못한 그 성은 요동 벌판의 영성자산성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지만 다른 설이 있고, 성주 양만춘이라는 이름은 조선 후기 문헌에 처음 나옵니다. 이 지도는 그 논쟁을 감추지 않되, 후보를 우수수 찍어 지도를 어지럽히지도 않습니다. 대표 자리 하나를 찍고 이설은 카드에 적습니다.
지도의 중심축은 660년입니다. 그해 신라군 5만이 경주를 떠나 황산벌로 갔고, 당군 13만이 배를 타고 금강으로 들어왔으며, 백제는 동쪽 산줄기의 성들로 막으려 했습니다. 신라군이 어느 길로 갔는지는 기록이 짧아 두 설이 있습니다. 남천정(이천)에서 보은 삼년산성을 거쳐 대전 동쪽 탄현을 넘는 북쪽 길과, 합천 대야성에서 거창·무주·금산을 거쳐 남쪽 탄현을 넘는 남쪽 길. 둘 다 그렸습니다. 대전은 백제가 신라를 막는 마지막 산줄기라 시내를 둘러싼 산마다 백제 성이 있고, 그래서 산성의 도시라 불립니다. 열아홉 곳을 하나도 빼지 않았습니다. 「660년 사비로 가는 길」을 켜면 이 마흔여섯 곳만 남고, 실제 작전로에 있던 성은 굵게, 당시 방어망으로 추정되는 주변 성은 옅게 보입니다.
성은 한 시대의 것이 아닙니다. 백제가 쌓고 신라가 고쳐 쓰고 고려가 몽골을 피해 들어가고 조선이 임진왜란 때 다시 쌓은 성이 아주 흔합니다. 카드에 "그 뒤"가 적힌 성은 고려·조선편에서 다시 나옵니다. 고려·조선편은 거란·여진·몽골·홍건적·왜구·임진왜란·병자호란·양요를 정거장으로 삼아, 그 침입 때 실제로 싸우거나 백성이 들어간 성만 켜지는 방식입니다.
오른쪽 판에서 나라를 켜고 끄거나 겹쳐 보기를 하나 고르세요. 점을 누르면 그 성의 주인 변천과 이설, 관련 전투로 가는 링크가 열립니다. 좌표는 세계유산·사적은 정확하고, 만주·북한의 작은 성과 문헌에만 나오는 성은 대표 지점입니다. 주요 성 40곳에는 성벽 약도(개요도)를 붙였습니다 — 실측 도면이 아니라 형식·방향·둘레·문지·집수지 같은 확인된 사실만 담은 우리 그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