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국민보도연맹 학살
낙동강 방어선 안쪽, 인민군에 끝내 점령되지 않았던 김해에서도 보도연맹원 예비검속과 총살이 이어졌다. 확인된 희생자만 최소 750명 — 당시 김해군 인구 대비 약 0.42%에 해당하는 규모다. 전선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가장 안전해야 했을 후방 지역에서 오히려 예방적 학살의 규모가 컸다는 사실은 이 사건의 본질이 군사적 필요가 아니라 정치적 숙청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사건은 학살의 기록 — 이승만 정부기 국가폭력 루트의 한 장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