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민주당의 고립과 호남 대 비호남 구도
3당 합당으로 거대 여당이 출현하자, 합류에서 배제된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은 제1야당에서 왜소야당으로 전락했다. 평민당은 "인위적 여대야소 획책은 쿠데타적 도전"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정국 주도권을 잃었다. 이 합당은 호남을 정치적으로 고립시켜 "호남 대 비호남" 구도를 고착시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후 수십 년간 한국 선거 정치를 규정하는 지역주의 균열의 결정적 분기점이 됐다.
관련 인물
세계는 같은 시기
- 소련 해체 (1991)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 개혁이 가속화되며 1991년 8월 보수파의 쿠데타 시도가 실패한 뒤, 12월 25일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다음날 소련이 공식 해체됐다. 12개 공화국이 독립국가연합(CIS)을 결성했다.
1985년 취임한 고르바초프의 개혁이 의도와 달리 체제 자체의 붕괴로 이어진 결과였다. 1990년 한소수교, 1991년 남북 유엔 동시가입 등 한반도 탈냉전 외교도 이 흐름 속에서 가능해졌다.
참고 자료
- 오마이뉴스 3당야합총력투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당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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