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7 도청 진압작전 — 항쟁의 마지막 새벽
5월 26일 청년층 중심의 민주시민학생투쟁위원회가 수습파를 도청에서 밀어내고 결사항전을 결의했다. 그날 밤 계엄군은 "상무충정작전" 지침에 따라 전차와 무장헬기를 동원한 최종 진압을 준비했고, 27일 새벽 도청·전일빌딩·YWCA 등을 향해 일제히 진입했다 — 이때도 헬기사격이 동원돼 전일빌딩 10층에 100여 개의 탄흔을 남겼다. 끝까지 도청에 남았던 시민군 다수가 그날 새벽 사살되거나 체포되며 열흘간의 항쟁은 막을 내렸다. 진압 직후 정부는 이를 "광주사태"로 명명해 폭동으로 규정했지만, 1988년 국회 청문회를 거쳐 1990년대 이후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공식 인정됐고 200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우리역사넷 집계로 사망 165명, 행방불명 65명, 상이 후 사망 376명 등 606명의 희생자가 확인됐으나, 암매장과 미신고 인원을 고려하면 실제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 자료
- 우리역사넷 광주민주화운동
- 경향신문 5.18헬기사격증언과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