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완, 진압을 시도하다 좌절되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 사실이 전해지자,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소장은 이를 명백한 군기 문란이자 반란으로 규정하고 즉각 병력 출동을 독촉하며 진압을 시도했다. 그러나 보안사의 정보력과 하나회의 광범위한 인맥에 막혀 진압 작전은 좌절됐고, 새벽 4시 30분 그 역시 보안사에 강제 연행됐다. 서빙고분실에서 수사를 받은 뒤 소장 신분으로 강제 예편되고 6개월간 가택연금을 당했다. 이후 아버지와 아들을 잇따라 잃는 개인적 불행까지 겪었지만, 1982년 전두환의 제안으로 한국증권전산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진압 실패 직후부터 보관해온 육필 수기는 1993년 한 기자에게 전달돼 12·12 군사반란의 실체를 밝히는 핵심 증거가 됐고, 그해 정승화 등과 함께 전두환·노태우를 검찰에 고발하며 끝까지 진실을 알리려 했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위키백과 12·12군사반란
- 시사IN 12·12군사쿠데타와인권유린의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