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파병 동의안 가결

1964년 7월 31일 · 서울 (국회)

미국이 베트남 전쟁 확대를 위해 "더 많은 깃발" 정책을 펴며 25개 우방국에 지원을 요청하자, 1964년 7월 31일 한국 국회는 "월남공화국 지원을 위한 국군부대의 해외파견에 관한 동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9월 11일 이동외과병원 의료진 130명과 태권도 교관단 10명이 파병되며,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해외 파병이자 8년 6개월간 이어질 베트남 참전의 출발점이 됐다. 6·3항쟁의 격렬한 반대와 달리, 베트남 파병에는 거의 반대 시위가 없었다 — 6·25 참전에 대한 보은과 반공이라는 명분이 사회적 합의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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