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군사정변
1961년 5월 16일 새벽, 박정희 소장과 8기생 장교들을 중심으로 한 군부 세력이 장교 250여 명과 사병 3,500여 명을 동원해 한강을 건너 서울의 주요 기관을 점거했다. 장면 총리 체포에는 실패했지만 KBS 라디오방송국과 국방부, 육군본부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윤보선 대통령은 "올 것이 왔다"며 진압을 방관했고, 미8군과 주한 미국대사관의 반대 성명에도 불구하고 60여 시간 만에 장면 내각이 총사퇴하며 제2공화국 헌정이 무너졌다. 4·19혁명으로 독재를 끝낸 지 1년 남짓, 한국 사회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자리를 찾기도 전에 30년 넘게 이어질 군사 권위주의 시대로 들어섰다.
왜 일어났나
4·19 뒤 장면 정부는 시위와 정쟁 속에서 흔들렸고, 군 안에서는 부정선거 책임자 처벌과 정군을 요구하는 젊은 장교들이 있었다. 박정희 소장과 김종필 등 육사 8기가 중심이 되어 1961년 5월 16일 새벽 3,500여 병력으로 한강을 건너 서울을 점령했다. 미군은 진압을 고려했으나 윤보선 대통령이 유혈을 피하자며 동의하지 않았고, 저항은 없었다.
무엇이 달라졌나
군사혁명위원회는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되어 정당을 해산하고 중앙정보부를 만들었으며 2년 반 군정을 폈다. 박정희는 1963년 선거로 대통령이 되어 18년을 집권했다. 경제개발계획과 산업화가 이 정권에서 이루어졌고, 3선개헌과 유신으로 민주주의는 무너졌다. 혁명인지 쿠데타인지를 두고 이름 붙이기가 오래 다투어졌고, 지금 교과서는 군사정변이라 쓴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위키백과 5·16군사정변
- 나무위키 5.16군사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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