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 조인

1953년 7월 27일 · 판문점

1953년 7월 27일 오전 판문점에서 유엔군 측 윌리엄 해리슨 중장과 공산군 측 남일 대장이 휴전협정에 서명했다. 발발 3년 1개월여 만에 전쟁은 휴전으로 봉인됐다. 휴전선을 따라 남북 2km씩 비무장지대가 설정됐고,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시위원단이 설치됐다. 대한민국 대표는 분단을 고착시키는 휴전을 인정할 수 없다며 끝내 서명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 협정은 평화협정이 아닌 정전협정으로,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반도는 법적으로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에 있다.

왜 일어났나

1951년 여름 전선이 38선 부근에서 고착되자 휴전 회담이 시작되었으나 포로 송환 문제로 2년을 끌었다. 이승만은 통일 없는 휴전을 반대하며 반공포로 2만 7천 명을 일방적으로 풀어주었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원조를 약속하고 이승만을 달랬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유엔군·북한군·중국군 사령관이 서명했고, 한국은 서명하지 않았다.

무엇이 달라졌나

전투는 멈췄으나 전쟁은 법적으로 끝나지 않았다.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가 생겼고, 이 선은 70년 넘게 국경처럼 굳었다. 제네바 정치회담이 통일 논의를 했으나 결렬되었다. 한국이 서명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은 이후 평화협정 논의에서 늘 문제가 되었다. 정전협정 조인일은 지금 유엔군 참전의 날로 기념된다.

세계는 같은 시기

참고 자료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이 사건은 근현대 지도(1945~1993)의 사건입니다 — 근현대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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