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 학살 — 미군에 의한 피난민 사살
1950년 7월 23일 영동읍 주곡리에 소개령이 내려져 주민들이 피난길에 올랐다. 7월 25일 미 제8군은 전선 이남으로 피난민을 통과시키지 말라고 지시했고, 무초 주한미대사도 전날 "피난민이 미군 전선 북쪽에서 나타나면 위협사격을 하고, 멈추지 않으면 사격하겠다"고 본국에 보고한 상태였다. 7월 26일 노근리 인근에서 미 제1기병사단 제7기병연대가 피난민 약 500~600명을 경부선 철로로 유도한 뒤 수색해 소지품을 압수했고, 곧이어 군용기의 기총소사와 폭격이 가해졌다. 피난민들은 노근리 쌍굴다리로 대피했지만 미군은 다리 양쪽에 기관총을 걸어두고 굴 안으로 사격을 계속해, 7월 29일 미군이 철수할 때까지 나흘간 학살이 이어졌다. 영동군청에 신고된 사상자는 248명(사망 150명, 실종 13명, 부상 63명)이며, 노근리평화재단은 실제 사망자가 250~300명에 달하고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였다고 추산한다. 1994년 정은용의 실록소설로 처음 알려졌고 1999년 AP통신 보도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2001년 한미 공동조사는 "사격 명령 하달 여부는 양측 증언이 일치하지 않아 확인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사건에 유감을 표명했지만 공식 사과나 배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참고 자료
- 위키백과 노근리양민학살사건
- 국가기록원 노근리사건진상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