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군 참전 — 전쟁의 국제전화
유엔군의 북진을 좌시할 수 없다고 본 중국은 1950년 10월 13일 출병을 최종 결정했고, 10월 19~26일 두 차례에 걸쳐 18개 사단 20만여 명의 중국인민지원군이 압록강을 넘어 한반도로 들어왔다.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유엔군은 예기치 못한 중공군의 대대적 공세에 밀려 11월 말부터 철수를 가속화했다. 동부전선에서는 미 제10군단이 장진호 일대에서 포위된 채 사투를 벌이다 흥남에서 대규모 해상철수를 단행하게 된다. 통일의 희망은 다시 한번 전쟁의 장기화로 뒤집혔다.
세계는 같은 시기
- 중국 국공내전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946~1949)
항일전쟁이 끝난 직후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 사이에 대륙의 패권을 건 내전이 본격화됐다. 초반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국민당이 우세했지만, 1948년 만주에서 전세가 뒤집히며 공산당이 빠르게 대륙을 장악했다.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이 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고,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대만으로 패주했다.
소련의 지원을 받은 공산당과, 미국이 지지한 국민당이 한반도를 사이에 둔 양쪽에서 비슷한 시기 각각 정권을 굳혔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냉전 구도가 이 내전을 통해 완성됐다. 패주한 국민당 잔존 세력 일부가 한반도 정세에도 영향을 줬고, 옌안 시절 중국공산당과 함께 싸운 조선인들이 북한 지도부에 합류해 있었다.
참고 자료
- 국가기록원 6·25전쟁 연표
- 전쟁기념관 6·25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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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근현대 지도(1945~1993)의 사건입니다 — 근현대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