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코발트광산 학살 — 경북 일대 보도연맹원이 모인 곳
일제가 군수자원으로 채굴했던 경산 코발트광산의 폐갱도는 1950년 7월 20일경부터 9월 20일경까지 대구형무소 재소자와 경산·청도·영천·창녕·밀양 등 경북 각지에서 끌려온 보도연맹원들의 처형장이 됐다. 손과 발을 묶인 채 50m 수직 갱도 앞에 세워져 총격을 받고 떨어지거나, 떨어지는 사람의 무게에 함께 묶인 이들까지 끌려 들어갔다. 충북 영동지역 청년방위대원 중 보도연맹 가입자 약 100명도 이곳까지 끌려와 희생됐을 정도로, 광범위한 지역의 예비검속자가 모여든 학살지였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9년 "희생자 수가 최소 1,000명에서 수천 명에 이르렀을 것"이라 결론 내렸다. 2007년부터 시작된 유해 발굴로 1,300여 점의 유해가 수습됐지만, 신원이 확인된 경우는 극히 일부에 그친다.
참고 자료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경산코발트광산사건
- 위키백과 경산코발트광산학살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