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형 피살
좌우합작운동을 이끌며 통일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분투하던 여운형이 1947년 7월 19일 서울 혜화동에서 극우 청년에게 피살됐다. 좌익에서는 기회주의자로, 우익에서는 공산주의 동조자로 양쪽 모두에게 공격받던 그의 죽음은 중도 통합 노선의 실질적 붕괴를 의미했다. 그가 이끌던 근로인민당도 사실상 와해됐다. 통일정부를 향한 중간지대가 사라지면서, 한반도의 정치 지형은 더욱 빠르게 좌우 양극단으로, 그리고 분단을 향해 굳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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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모스크바삼상회의 관련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