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3상회의 — 신탁통치 결정
1945년 12월 16일부터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영·소 3국 외상회의는 한반도에 임시 민주정부를 수립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하며, 최장 5년간 4개국 신탁통치를 실시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12월 28일 이 소식이 전해지자 독립을 고대하던 국민들은 신탁통치를 식민지로의 회귀로 받아들여 거센 반탁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됐다. 좌익 진영은 처음에는 반탁이었다가 이후 모스크바 결정 지지로 입장을 바꾸면서 좌우 대립이 더욱 격화됐다.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국제적 합의가, 도리어 한반도 내부의 분열을 깊게 만드는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
왜 일어났나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미·영·소 외무장관이 한반도 문제를 다루었다.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미소공동위원회 설치와 최대 5년의 신탁통치가 결정되었다. 국내에는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하고 미국이 즉시 독립을 주장했다는 보도가 먼저 퍼졌는데, 실제 내용과 달랐다. 해방된 나라에 다시 외국 통치를 받으라는 말로 들렸다.
무엇이 달라졌나
우익은 반탁 운동을 벌였고 좌익은 처음 반대하다 결정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이 갈림이 좌우 대립을 결정적으로 만들었고, 미소공동위원회는 두 차례 열렸으나 협의 대상을 두고 결렬되었다. 1946년 이승만은 정읍에서 남쪽만의 정부를 말했고, 문제는 유엔으로 넘어가 1948년 단독선거로 이어졌다. 분단이 굳어지는 갈림길이 여기였다.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모스크바삼상회의
- 우리역사넷 광복과분단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이 사건은 근현대 지도(1945~1993)의 사건입니다 — 근현대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