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이주 — 외가에서 보낸 소년 시절
12세 무렵 어머니 초계 변씨의 고향인 충청도 아산 백암리(현 현충사 자리)로 내려가 소년기를 보냈다. 아산 이주의 배경에 대해서는 조부 이백록이 기묘사화에 연루된 여파로 가세가 기울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지만, 어머니가 남긴 별급문기(재산 분배 문서)를 보면 집안이 전국에 상당한 토지와 노비를 소유하고 있어 이 "몰락설"에는 반론도 있다 — 당시 흔했던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 처가·외가 인근에 자리 잡는 혼인 풍습)에 따른 이주였다는 해석이다. 이곳에서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히며 무인으로서의 자질을 키웠고, 21세 되던 1565년에는 이웃한 온양(상주) 방씨 가문 방진의 딸과 혼인해 처가 인근에 정착했다. 오늘날 현충사 경내에는 그가 자란 옛집과 활쏘기를 연습하던 활터, 그가 마셨다는 우물 "충무정"이 남아 있다.
이 사건은 이순신 루트 루트의 한 장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