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헛된 강화 교섭 — 심유경과 고니시 유키나가
제2차 진주성 전투 이후 전선은 교착됐고, 명의 심유경과 일본의 고니시 유키나가를 창구로 3년 넘게 강화 교섭이 이어졌다.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 황녀를 일본 왕비로 삼고 조선 남부 4도를 할양하라는 등 명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내걸었던 반면, 협상 실무를 맡은 양측 관료들은 이를 은폐한 채 서로 유리하게 문서를 꾸며 보고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1596년 명의 책봉사가 오사카에서 도요토미에게 "일본 왕에 책봉한다"는 내용만 전달되며 그가 요구한 조건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협상은 완전히 결렬됐다.
이 사건은 임진왜란·정유재란 루트 루트의 한 장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