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치의 절멸 — 수만 마리에서 0으로

1905 · 독도(가제바위 일대)

독도는 동해 강치(바다사자)의 최대 번식지였다 — 울릉도 사람들은 강치를 "가제"라 불렀고 독도를 가제바위의 섬으로 기억했다. 편입 직후 나카이의 다케시마어렵합자회사가 포획을 독점하면서 학살이 시작됐다. 가죽은 가방과 배낭으로, 기름은 등유로, 살과 뼈는 비료로 팔렸고, 새끼는 산 채로 잡혀 서커스단에 넘겨졌다. 일본 측 기록으로도 편입 초기 몇 해 동안 연간 수천 마리가 포획됐고, 1900년대 초 수만 마리로 추정되던 개체수는 1930년대에 수십 마리 수준으로 무너졌다. 광복 후에도 회복은 없었다 — 1950년대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 수십 마리를 목격한 증언을 끝으로 급감해, 일본에서 1970년대 목격을 마지막으로 동해 강치는 지구에서 사라졌다(일본강치는 1990년대 이후 국제적으로 절멸종 처리). 영유권 서사에 가려 잘 언급되지 않지만, 독도가 겪은 가장 되돌릴 수 없는 상실이다.

이 사건은 독도, 기록의 섬 루트 루트의 한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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