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산문화 — 세 갈래로 갈리는 해석
요하 유역에서 기원전 4700~2900년경 번성한 홍산문화는 정교한 옥기와 대형 제단·여신묘 유적으로 유명하다. 이 문명의 민족적 귀속을 둘러싸고 세 입장이 맞선다 — 중국은 이를 "중화문명의 기원"으로 자국사에 편입시키려 하고, 일부 한국 재야사학계는 반대로 "동이족·한민족의 원류 문명"이라 주장한다. 반면 국내외 주류 고고학계는 신중하다. 신석기 물질문화를 수천 년 뒤 문헌에 등장하는 특정 민족·국가와 직접 연결짓는 것은 언어·혈통·정치적 계승관계를 증명할 방법이 없어 고고학만으로 입증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편입 시도는 홍산문화 발견(1935년) 이후 비교적 최근(1980년대 이후, 2000년대 국가 주도 프로젝트와 함께 강화)에 나타난 정치적 해석이라는 점에서, "원래부터 중국사였다"는 주장의 근거는 약하다.
이 사건은 고대사 논쟁루트 루트의 한 장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