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개남, 남원에서 독자 노선을 걷다
전봉준의 온건한 개혁 노선과 달리, 김개남은 남원을 근거지로 삼아 더 급진적이고 강경한 노선을 취했다. 양반과 부호에 대한 직접적 응징도 서슴지 않았던 그의 노선은 전봉준과 종종 갈등을 빚었다 — 동학농민운동이 단일한 지도부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조직이 아니라, 여러 갈래의 노선이 공존했던 광범위한 운동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사건은 동학 — 득도에서 우금치까지, 그리고 3·1운동으로 루트의 한 장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