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화교 학살
만보산 오보가 퍼진 1931년 7월 4일, 평양에서 조선인 군중이 화교 거주지와 상점을 습격해 100명 넘는 중국인을 살해했다. 인천·경성 등 다른 도시로도 화교 배척 폭동이 번졌다. 가해자가 일본이 아니라 같은 식민지 처지의 조선 민중이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한국사 서술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불편한 기억이다. 학계에서는 일부 민족주의 진영의 의도적 선동이 작용했다는 분석과, 식민지 경제난 속 화교에 대한 누적된 반감이 폭발한 것이라는 분석이 함께 제기된다. 식민지배가 낳은 차별과 빈곤이, 또 다른 약자를 향한 폭력으로 번진 비극이었다.
참고 자료
- 나무위키 1931년 평양화교 학살
- 에펨코리아 화교 잔혹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