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학생운동의 여진 — 백지동맹과 3차 시위
1929년 11월 시작된 광주학생운동의 불길은 새해에도 꺼지지 않았다. 1930년 1월 9일 광주고보 학생들이 백지동맹(답안지를 백지로 내는 시험 거부 투쟁)을 일으켜 17명이 퇴학당했고, 16일에는 제3차 시위가 발각돼 48명이 무더기로 퇴학당했다. 거듭된 희생에도 학생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1930년 3월까지 이어진 이 항쟁에는 결국 전국 320여 개교 5만 4천여 명이 참여했고, 1,400여 명이 퇴학·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식민지 교육에 대한 가장 끈질긴 저항이었다.
참고 자료
- 우리역사넷 광주학생운동의 전개
-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