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학생항일운동

1929년 11월 3일 · 광주

나주역 사건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은 채, 1929년 11월 3일 광주고보 학생들이 일왕 생일 기념식 후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가두로 나섰다. 비밀결사 성진회를 계승한 독서회 중앙본부(장재성)가 조직적 기반이 됐다. 신간회 광주지회의 지원으로 시위는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졌다. 1930년 3월까지 이어진 이 항쟁에 194개 학교, 약 5만 4천 명이 참여했고 580여 명이 퇴학, 2,330여 명이 무기정학을 당했다.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이자 일제강점기 최후의 전국적 항일운동이었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지도에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