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표회의 소집 운동

1922년 1월 · 상하이

이동휘 사임과 워싱턴 회의 실패로 권위가 무너진 임시정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1922년 독립운동 세력 전체가 모이는 국민대표회의를 열자는 운동이 본격화됐다. 안창호를 중심으로 한 개조파와 신채호·박용만의 창조파가 각자의 구상을 들고 세력을 결집했다. 이 운동은 1923년 1월 실제 국민대표회의 개최로 이어진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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