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 연해주 한인사회의 페치카
함경북도 경원의 노비 집안에서 태어나 아홉 살에 가족과 함께 연해주로 이주한 최재형은, 군납 사업으로 자수성가해 연추 한인사회의 지도자가 됐다. 그는 한인 마을에 정교회 학교 32개를 세우고 동포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어, 사람들은 그를 "페치카(따뜻한 난로)"라 불렀다. 1908년 해외 최대 독립운동 단체 동의회를 세워 총장이 됐고,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의거(1909)를 후원한 배후이기도 했다.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의 초대 재무총장으로 선임됐으나 연해주를 떠나지 않았고, 1920년 4월 신한촌을 습격한 일본군에게 우수리스크에서 체포돼 총살당했다. 자신의 부와 능력을 모두 동포와 독립에 바친, 연해주 항일운동의 대부였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위키백과 최재형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독립기념관 최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