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운동 — 나라 빚을 백성이 갚자
일본은 대한제국에 차관(빚)을 강요해 1,300만 원에 이르는 국채를 안겼다 — 경제적으로 종속시켜 병합을 쉽게 하려는 수법이었다. 1907년 2월 대구에서 서상돈·김광제 등이 "이 빚을 백성의 힘으로 갚아 국권을 지키자"며 국채보상운동을 일으켰다. 남자는 담배를 끊어 그 돈을 내고, 여자는 비녀와 가락지를 내놓았다.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이 호응하며 운동은 전국으로 번졌다. 그러나 통감부는 모금을 주도한 대한매일신보의 양기탁을 횡령 혐의로 구속하는 등 조직적으로 방해했고, 운동은 끝내 좌절됐다. 비록 빚을 다 갚지는 못했지만, 평범한 백성들이 주머니를 털어 나라를 지키려 한 이 운동은 훗날 물산장려운동과 IMF 금모으기로 이어지는 경제적 애국운동의 원형이 됐다. 을사늑약 이후 빼앗긴 경제적 자강을 스스로 되찾으려 한 시도였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채보상운동
- 우리역사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