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현 의병 봉기와 순국

1906년 6월 · 전북 태인 · 순창

위정척사의 거유(巨儒) 최익현은 을사늑약에 분개해, 1906년 6월 74세의 노구를 이끌고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내 나이 일흔넷, 죽음을 두려워하랴"며 제자들과 함께 일어선 그는 순창에서 관군·일본군과 맞섰으나, "같은 동포끼리 싸울 수 없다"며 무기를 버리고 체포됐다. 일본은 그를 쓰시마(대마도)로 끌고 갔고, 최익현은 적이 주는 음식을 거부하다 1907년 1월 그곳에서 순국했다. 그의 유해가 부산에 닿자 수많은 백성이 통곡하며 맞이했다. 이미 노쇠한 유학자가 목숨으로 보여준 항거는, 을사의병의 정신적 상징이 되어 이후 정미의병으로 이어지는 항일 의병전쟁에 큰 울림을 남겼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지도에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