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을 긋지 않았습니다. 짙을수록 중심이고, 세력끼리 겹치는 것은 오류가 아니라 당대의 실상입니다. 1232년 시점에서 고려가 짙은 점 하나와 옅은 면으로 나뉘어 보이는 것은 의도한 것입니다 — 짙은 점은 강화도의 조정이고 옅은 면은 유린되던 본토입니다. 그 농도 차이 자체가 이 시기의 성격입니다.
이 편은 시리즈에서 한국사 접점이 가장 깊습니다. 고려가 40년을 버티고 왕조를 유지한 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결과입니다 — 몽골이 정복한 곳 대부분은 왕조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동시에 그 대가는 백성이 치렀습니다. 둘 다 사실이며, 하나만 말하면 정직하지 않습니다.
좌표와 반경은 개형(槪形)입니다. 학살 규모에 관한 숫자는 사료마다 편차가 매우 커 학계에서 확정하지 않으므로, 이 지도에서도 특정 수치를 단정하지 않고 그 불확실성을 각 세력의 설명에 밝혔습니다.
원 간섭기에 목화와 화약 제조법, 이슬람 천문학과 역법이 고려에 들어왔습니다. 유라시아가 하나의 질서 아래 놓이면서 동서 교류가 이례적으로 활발해진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연결은 자발적 선택이 아니었고, 같은 시기 일본 원정에 쓸 배를 만드느라 백성의 부담은 극심했습니다.
폭력으로 열린 길 위에서 오간 것들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얻은 것과 치른 대가를 같은 저울에 올릴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