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일어났나.** 1793년 1월 루이 16세가 처형되었다. 유럽의 왕들에게 이것은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선례의 문제였다 — 재판을 거쳐 왕을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다는 것.\n\n그해 프랑스는 사방이 적이었다. 대외 전쟁, 방데의 대규모 반란, 다시 오른 곡물 가격. 공안위원회에 권력이 집중되고 이어진 1년을 공포정치라 부른다. 전국에서 처형된 사람은 1만 6천 명 이상, 재판 없이 죽거나 옥사한 경우까지 더하면 수만 명에 이른다는 추계가 일반적이다. 희생자의 다수는 귀족이 아니라 농민과 노동자였고, 시간이 갈수록 표적은 바깥이 아니라 안이 되었다. 혁명은 자신을 먹기 시작했다.\n\n1794년 7월 로베스피에르가 처형되며 공포정치가 끝난다. 결정적 계기는 며칠 전 그가 공화국 안에 배신자들이 있다고 하면서 이름을 대지 않은 연설이었다. 그 자리의 모든 의원이 자신이 다음일 수 있다고 느꼈다. 이후 총재정부는 선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군대를 불러 뒤집었고, 4년간 쿠데타가 반복된다. 정치가 자기 힘으로 서지 못하고 군의 개입에 기대기 시작하면 다음 순서는 대개 정해져 있다. 1799년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고 5년 뒤 황제가 된다.\n\n**그때 한반도는.** 1800년 정조가 죽고 순조가 열한 살에 즉위하면서 세도정치가 시작된다. 이듬해 신유박해로 남인이 대거 숙청되었고, 정약용은 유배를 떠나 18년을 강진에서 보낸다. 장용영은 폐지되었다. 화성에 담겼던 구상은 왕이 죽자 함께 끝났다.\n\n두 나라가 같은 시기에 반대 방향으로 갔다. 프랑스는 왕을 없애고 혼란을 겪었고, 조선은 왕이 죽자 특정 가문이 권력을 독점했다. 어느 쪽도 안정으로 가지 않았다.\n\n**도착하기까지.** 130년이 걸렸다. 경로는 일본이었다. 「자유」「민권」「공화」 같은 말 자체가 일본에서 만들어진 번역어이며, 1880년대 개화파가 접한 것도 그 어휘였다. 그리고 1919년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헌장이 선포된다. 제1조 민주공화제, 제3조 남녀·귀천·빈부의 계급이 없는 일체 평등, 제5조 남녀 모두의 선거권.\n\n주목할 점은 순서를 건너뛴 것이다. 프랑스는 왕정과 공화정 사이를 130년간 여러 번 오갔지만, 나라를 잃은 상태에서 만든 정부는 왕정 복고가 아니라 곧바로 공화제를 택했다. 조선 왕조가 끝난 지 9년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리고 그 조항은 지금 헌법 제1조로 이어져 있다.\n\n**세계사적으로는** 나폴레옹 몰락 뒤 왕정이 복귀했지만 신분제는 돌아오지 않았다. 왕은 돌아왔는데 왕이 다스리던 사회는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군이 지나간 유럽에서 그에 맞서는 감정이 자라 민족이라는 단위로 사람을 묶는 관념을 퍼뜨렸다. 혁명이 수출한 것은 공화정이 아니라 민족주의였다는 평가가 여기서 나온다.\n\n혁명은 언제 끝나는가. 왕이 처형된 날인가, 황제가 즉위한 날인가, 아니면 신분제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된 어느 시점인가?
④ 프랑스 혁명 하 — 황제로 끝난 혁명, 그리고 130년 뒤 상하이
이 글은 혁명, 그때 우리는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