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9년 7월, 인각사. 여든넷의 일연이 세상을 떠났다.
제자들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손으로 금강인(金剛印)을 맺은 채 앉아서 죽었다고 비문은 전한다.
그가 남긴 것은 불교 저술 여든 몇 권과, 비문에 적히지 않은 책 한 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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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네 편을 지나오며**
이 시리즈에서 우리는 『삼국유사』의 이야기들을 읽었다.
곰이 사람이 되어 나라를 낳았고, 알에서 왕들이 나왔으며, 바다 건너 왕비가 왔다. 여왕이 꽃 그림을 보고 향기를 알아맞혔고, 종이 지붕을 뚫고 하늘로 올라갔다. 승려가 표주박을 두드리며 마을을 돌았고, 다른 승려는 술에 취해 삼태기를 지고 다녔다. 한 사내가 꿈에서 한평생을 살았고, 한 여자가 자기를 죽여 달라 부탁했다.
이 모든 이야기를 한 사람이 모았다. 몽골에 무릎 꿇은 나라에서, 불타 버린 탑 앞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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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역사서인가**
마지막으로 이 질문을 짚고 가자.
엄밀한 의미에서 『삼국유사』는 오늘날의 역사서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다. 연대가 어긋나는 곳이 있고, 검증되지 않은 전승이 섞여 있으며, 초자연적 현상이 사실처럼 서술된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단군 조에서 일연은 요임금 즉위 연도 계산이 맞지 않는다고 직접 적었다. 김대성 조에서는 향전과 절의 기록이 서로 다르다고 밝혔다. 혜공과 원효의 일화에서는 어떤 이는 이 말을 원효가 했다고도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기가 옮기는 기록의 불확실함을 계속 표시한다. 이건 어디서 가져왔고, 이 부분은 판본마다 다르며, 이 계산은 이상하다고.
김부식은 이런 방식을 쓰지 않았다. 정사는 확정된 것만 적어야 했고, 편찬자의 망설임은 드러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정직한 태도인가는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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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해 이야기를 모았나**
일연이 왜 이 책을 썼는지, 그 자신은 밝히지 않았다.
기이편 서문에서 시조들의 신이한 탄생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이 거의 유일한 단서다. 중국의 성인들도 다 그러했으니, 우리 것만 괴이하다 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이것은 방어의 문장이다. 무엇으로부터의 방어인가.
하나는 유교적 합리주의로부터의 방어일 것이다. 신이한 이야기는 사료가 아니라는 태도에 맞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시대 자체로부터의 방어였을 수 있다. 몽골에 굴복하고, 왕의 시호에 충(忠) 자가 붙기 시작하고, 젊은이들이 남의 전쟁에 끌려가던 시기였다. 그 시기에 이 땅에 하늘에서 내려온 자들이 있었고 알에서 나온 왕들이 있었다고 적는 일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앞서 여러 번 짚었듯 민족이라는 개념은 근대의 산물이다. 13세기 승려에게 20세기의 민족의식을 그대로 입히면 그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보는 일이 된다.
확실한 것은 이것이다. 그는 사라져 가는 이야기들을 모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의 출처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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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질문들**
이 책을 읽고 나면 답보다 질문이 남는다.
일연은 이 이야기들을 믿었을까. 곰이 사람이 됐다는 것, 용이 나타났다는 것, 주술로 배가 가라앉았다는 것을.
알 수 없다. 그는 자기 의견을 거의 적지 않았다. 대신 어디서 가져온 이야기인지, 다른 판본은 어떻게 다른지를 적었다.
믿음을 요구하지 않는 기록. 그것이 이 책의 방식이다.
그리고 또 하나. 그는 이 책이 어떻게 될지 알았을까.
자기 비문에도 오르지 못한 이 책이, 700년 뒤 국보가 되고 유네스코 기록유산이 되며, 이 땅의 사람들이 자기 시작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펼쳐 보는 책이 되리라는 것을.
짐작조차 못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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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삼국유사』의 마지막 이야기는 「빈녀양모」다. 앞서 3부에서 읽었다.
가난한 딸이 눈먼 어머니를 봉양하려고 자기 몸을 팔았고, 그것을 안 어머니가 통곡했으며, 지나가던 화랑이 그 광경을 보고 도왔다는 이야기다.
왕도 아니고 고승도 아니다. 나라를 세우지도 않았고 기적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이름조차 지은(知恩) — 은혜를 안다는 뜻의 흔한 이름이다.
일연은 이 이야기로 책을 닫았다.
그리고 자기 삶에서는, 국존 자리를 내려놓고 아흔여섯 살 어머니에게 돌아갔다. 어머니가 죽은 뒤에는 그 무덤에서 가까운 절에서 남은 5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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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년, 그는 불탄 황룡사 앞에 서 있었다.
80미터 높이의 탑이 있던 자리에 주춧돌만 남아 있었다. 아홉 층이 아홉 나라를 항복시킨다고 했던 그 탑이다.
탑은 나라를 지키지 못했다. 나라는 무릎을 꿇었고, 그도 그것을 보았다.
그가 한 일은 이야기를 적는 것이었다. 탑이 어떻게 세워졌는지, 누가 그것을 지었는지, 왜 아홉 층이었는지.
탑은 사라졌고 글은 남았다.
지금 우리가 그 탑의 높이를 어림할 수 있는 것은, 그 글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