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에는 호국(護國)이라는 말을 물건의 형태로 만든 것들이 있었다. 그중 둘이 삼국유사에 자세히 실려 있다. 하나는 탑이고, 하나는 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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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과 신인**
삼국유사 탑상편 「황룡사 구층탑」 조는 이렇게 시작한다.
자장(慈藏)이 당나라에 유학하고 있을 때, 태화지(太和池) 못가를 지나는데 신인(神人)이 나타나 물었다.
너희 나라에 어떤 어려움이 있느냐.
자장이 답했다. 우리나라는 북으로 말갈에 닿고 남으로 왜인에 접해 있으며, 고구려와 백제의 침범이 잦아 백성이 편치 못합니다.
신인이 말했다. 지금 그대 나라는 여자를 왕으로 삼아 덕은 있으나 위엄이 없다. 그래서 이웃 나라가 침략을 꾀하는 것이다. 빨리 돌아가라.
자장이 물었다. 돌아가서 무엇을 하면 이롭겠습니까.
신인이 답했다. 황룡사의 호법룡은 나의 맏아들이다. 돌아가 그 절에 구층탑을 세우면 이웃 나라가 항복하고 아홉 나라가 조공해 와서 왕업이 길이 편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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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을 세우다**
자장은 643년(또는 645년, 기록에 따라 다르다) 귀국해 선덕여왕에게 이 일을 아뢨다.
왕이 신하들과 의논하니, 백제에서 기술자를 데려와야 한다고 했다. 백제의 장인 아비지(阿非知)를 청해 왔고, 김용춘(김춘추의 아버지)이 소장 이백 명을 거느리고 일을 감독했다.
삼국유사는 여기에 기묘한 일화를 적는다. 아비지가 처음 기둥을 세우던 날, 백제가 망하는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아비지가 의심이 들어 손을 놓았는데, 갑자기 땅이 흔들리고 어두워지더니 노승 한 사람과 장사 한 사람이 금전문에서 나와 그 기둥을 세우고 사라졌다. 아비지는 그것을 보고 뉘우쳐 탑을 완성했다.
적국의 장인이 적국의 호국탑을 세운다는 구도다.
**아홉 층의 의미**
각 층은 신라를 위협하는 나라를 뜻했다. 1층은 일본, 2층은 중화, 3층은 오월, 4층은 탁라, 5층은 응유(백제), 6층은 말갈, 7층은 단국, 8층은 여적(여진), 9층은 예맥이라고 삼국유사는 적는다.
탑을 세우면 그 나라들이 항복해 온다는 것이다. 주술적 사고이지만, 동시에 당시 신라가 누구를 위협으로 여겼는지 보여주는 목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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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탑의 최후**
황룡사 구층탑은 645년 완성됐다. 여러 차례 벼락을 맞고 불에 타 그때마다 다시 세웠다.
1238년, 몽골군의 방화로 불탔다. 다시 세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1281년, 일연은 경주에서 그 잿더미를 보았다.
이 시리즈의 첫 편에서 언급한 그 장면이다. 삼국유사 탑상편에 「황룡사 구층탑」 조를 쓴 사람이, 자기가 글로 적고 있던 그 탑이 사라진 자리를 직접 보았다.
오늘날 그 자리에는 주춧돌만 남아 있다. 발굴 조사 결과 탑의 기단 한 변이 22미터가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높이는 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80미터 안팎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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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 온갖 파도를 잠재우는 피리**
두 번째 물건은 기이편에 있다.
신문왕 2년(682년), 동해에 작은 산 하나가 떠서 감은사 쪽으로 떠내려왔다. 물결을 따라 오갔다.
신문왕은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감은사를 세운 참이었다. 문무왕은 죽어서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겼고, 유언대로 동해 바위에 장사 지냈다. 감은사 금당 아래에는 용이 드나들 수 있도록 구멍을 냈다고 전한다.
일관이 아뢰었다. 돌아가신 왕께서 바다의 용이 되어 삼한을 지키고 계시고, 김유신 공도 삼십삼천의 한 아들로 내려와 대신이 되었습니다. 두 성인이 덕을 함께해 성을 지킬 보물을 내리려 하십니다.
왕이 바다로 나가 보니, 산 위에 대나무가 하나 있었다. 낮에는 둘로 갈라지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졌다.
용이 나타나 말했다.
손바닥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이 대나무도 합쳐진 뒤에야 소리가 납니다. 성왕께서 소리로 천하를 다스릴 상서로운 조짐입니다. 이 대나무를 베어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화평할 것입니다.
대나무를 베어 피리를 만들었다.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병이 나으며, 가물 때는 비가 오고 장마 때는 개며, 바람이 자고 물결이 잔잔해졌다.
그래서 이름을 만파식적(萬波息笛) — 온갖 파도를 잠재우는 피리라 하고 국보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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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는 뭐라고 했나**
여기서 두 책의 태도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삼국사기』에도 만파식적이 언급된다. 그런데 역사를 서술하는 본기가 아니라 악기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짧게 나온다. 그리고 이런 취지의 논평이 붙는다 — 이런 말이 있으나 괴이해서 믿을 수 없다.
김부식은 이 이야기를 역사로 취급하지 않은 것이다.
일연은 기이편에 자세히 실었다. 용이 나타나 대나무를 주는 장면부터 피리의 효험까지 다 적었다.
어느 쪽이 옳은가. 사실 판정의 문제라면 김부식이 옳다. 피리를 불어 적병이 물러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른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7세기 후반 신라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싶어 했는가. 통일 직후, 당과의 전쟁을 막 끝낸 나라에서 죽은 왕이 용이 되어 지켜준다는 이야기가 왜 필요했는가.
그 질문에 답하려면 일연의 기록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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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이라는 관념**
신라의 호국 불교는 자주 언급되는 주제다. 황룡사 구층탑, 사천왕사, 감은사, 만파식적 — 모두 불법의 힘으로 나라를 지킨다는 발상 위에 있다.
이 관념에는 양면이 있다.
한편으로 그것은 종교가 국가에 봉사하는 구조다. 불교 본래의 가르침에서 보면 국가 수호는 부차적인 문제이고, 왕권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될 위험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신라가 실제로 겪은 위기의 반영이다. 6~7세기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에 시달렸고, 뒤에는 당과 싸웠다. 나라가 없어질 수 있다는 감각이 실재했다.
탑을 세우고 피리를 만드는 것으로 그 위기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실제로 나라를 지킨 것은 군대와 외교였다.
다만 사람들에게는 그런 상징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상징은 때로 실물보다 오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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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아이러니**
황룡사 구층탑은 아홉 나라를 항복시킨다는 뜻으로 세워졌다. 그중 6층이 말갈, 8층이 여진이었다.
그 탑을 불태운 것은 몽골이었다. 목록에 없던 나라다.
그리고 그 재를 본 승려가 탑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탑은 사라졌지만 글은 남았다.
오늘 우리가 그 탑의 높이와 구조를 어림할 수 있는 것은 그 글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