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돈 — 목에서 흰 피가 솟다

527 8월 5일 · 경주 (흥륜사 · 백률사)

삼국유사 흥법편의 조목 제목은 「원종흥법 염촉멸신(原宗興法 猒觸滅身)」이다. 원종이 불법을 일으키고 염촉이 몸을 없앴다는 뜻이다.

원종(原宗)은 법흥왕의 다른 이름이고, 염촉(猒觸)은 이차돈의 다른 이름이다.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제목에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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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하고 싶었던 일**

법흥왕은 즉위한 뒤로 불법을 일으키고자 했다. 그러나 신하들의 반대가 많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어느 날 왕이 신하들을 불러 물었다.

성조(聖祖) 미추왕께서 아도와 함께 처음 불교를 펴려 하셨으나 큰 공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부처의 묘한 교화가 막혀 행해지지 못하니 나는 매우 슬프다. 마땅히 큰 절을 세우고 불상을 만들어 선왕의 뜻을 이으려 하는데,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대신 공알(恭謁) 등이 간언했다.

근래 흉년이 들어 백성이 편안하지 못하고, 이웃 나라 군사가 국경을 침범해 전쟁이 그치지 않습니다. 어느 여유가 있어 백성을 괴롭히는 공사를 일으켜 쓸데없는 집을 지으려 하십니까.

왕이 탄식했다. 나에게 덕이 없어 왕업을 잇기가 어렵구나. 위로는 음양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아래로는 백성의 즐거움이 없으니, 정사를 보는 틈틈이 불도에 마음을 두려 한들 누구와 함께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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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나서다**

그때 이차돈이라는 젊은 신하가 있었다. 나이 스물둘, 왕을 가까이서 모시는 사인(舍人) 벼슬이었다.

그가 왕에게 아뢰었다.

신을 목 베어 여러 사람의 의논을 정하십시오.

왕이 말했다. 본래 불도를 일으키려는 것인데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

이차돈이 답했다. 몸을 버려 어진 일을 이루는 것은 신하의 절개 중에서도 큰 것입니다.

왕은 끝내 그의 뜻을 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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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

이차돈은 왕명을 사칭해 절을 지으라는 뜻을 관리들에게 전했다. 신하들이 놀라 따져 물었다.

왕이 이차돈을 불러 꾸짖었다. 네가 어찌 왕명을 거짓으로 전했느냐.

이차돈이 답했다. 부처의 가르침이 널리 퍼진다면 신은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왕이 신하들을 불러 물으니 모두 그를 죽여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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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피**

형을 집행하는 날, 이차돈이 말했다.

부처가 신령하다면 내가 죽은 뒤 반드시 이상한 일이 있을 것이다.

목을 베자 피가 솟았는데, 그 빛깔이 흰 젖과 같았다.

그리고 이상한 일들이 이어졌다. 잘린 머리가 날아가 금강산(경주 북쪽 산) 꼭대기에 떨어졌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해가 빛을 잃었으며, 땅이 흔들리고 비가 내렸다.

삼국유사는 여기에 특이한 세부를 하나 덧붙인다. 곧은 나무가 부러지고 원숭이들이 떼를 지어 울부짖었다는 것이다.

(이 원숭이 대목은 뒷날 논란거리가 됐다. 삼국시대 한반도에 원숭이가 살았다는 근거로 인용되기도 하지만, 삼국유사는 13세기 기록이고 설화적 서술이 섞여 있어 이를 생물학적 증거로 삼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삼국사기나 고려사 같은 정사에는 원숭이 자생 기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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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신하들이 두려워하며 다시는 불교를 반대하지 못했다. 527년, 신라는 불교를 공인했다.

고구려가 372년, 백제가 384년에 불교를 받아들인 것에 비하면 150년가량 늦다. 신라는 지리적으로 가장 안쪽에 있었고, 토착 신앙과 귀족 세력의 힘이 강했다.

이차돈의 머리가 떨어진 자리에는 절을 세웠다. 백률사(栢栗寺)다. 지금도 경주 소금강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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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먼저 사료의 층위를 정리해 두자.

『삼국사기』도 이 일을 적는다. 김대문의 『계림잡전』을 인용해,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하려 했으나 신하들의 반대에 막혔고 이차돈이 자기를 죽여 왕의 위엄을 세우라고 청했다는 내용이다.

두 책이 큰 줄기는 같다. 다만 삼국유사가 훨씬 자세하고, 흰 피를 비롯한 기이한 현상들이 강조된다.

또 하나. 이차돈의 순교를 새긴 비석이 실제로 있다. 818년에 세운 것으로 전하는 백률사 석당(石幢)으로, 지금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다. 여섯 면에 그림과 글이 새겨져 있는데, 목이 잘린 이차돈의 몸에서 피가 솟는 장면이 있다.

즉 이 이야기는 9세기 초에 이미 지금과 비슷한 형태로 전해지고 있었다.

**흰 피가 뜻하는 것**

흰 피 — 정확히는 흰 젖 같은 피 — 는 여러 불교 설화에 나타나는 모티프다. 성인의 순교나 죽음에서 보통과 다른 색의 피가 나오는 이야기는 인도와 중국의 불전에도 있다.

피가 붉지 않다는 것은 그 죽음이 보통의 죽음이 아님을 표시한다. 그리고 젖은 생명을 기르는 것이니, 죽음이 곧 생명이 된다는 역설이 담긴다.

**정치적으로 읽으면**

연구자들은 이 사건을 왕권 강화 과정으로 읽는다.

6세기 초 신라는 국가 체제를 정비하던 중이었다. 법흥왕은 율령을 반포하고, 관등을 정비하고, 연호를 사용했다. 불교 공인도 그 흐름 안에 있다.

토착 신앙은 각 부족과 귀족 집단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반면 불교는 왕을 중심으로 하는 보편적 질서를 뒷받침할 수 있었다. 왕이 곧 부처라는 관념(왕즉불)이 뒷날 신라에서 나타나는 것도 이 맥락이다.

그러니 이차돈의 순교는 종교 사건이면서 동시에 정치 사건이다. 반대하던 귀족들이 그 뒤로 침묵했다는 것은, 왕권이 그만큼 강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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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질문**

이 이야기에는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다.

이차돈은 왜 왕명을 사칭했는가. 왕과 미리 짜고 한 일이라는 것이 이야기의 전제인데, 그렇다면 이것은 자발적 순교가 아니라 기획된 정치 행위에 가깝다.

삼국유사도 이 점을 숨기지 않는다. 이차돈이 먼저 나를 죽이라고 제안하고, 왕이 만류하고, 결국 왕이 그 뜻을 꺾지 못했다는 순서로 적는다.

스물두 살 청년이 자기를 죽여 달라고 청하고, 왕이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죽음으로 반대 세력이 침묵한다.

한 사람의 죽음이 국가의 방향을 바꾼 사건이다. 그것이 신념이었는지 계략이었는지, 혹은 둘 다였는지는 기록만으로는 확정할 수 없다.

다만 그 자리에 절이 섰고, 300년 뒤 비석이 세워졌으며, 15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이름이 전한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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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삼국유사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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