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를 이해하려면 그보다 136년 앞서 나온 책을 먼저 봐야 한다. 『삼국사기』다.
1145년, 인종의 명을 받아 김부식이 편찬을 마쳤다. 국가가 만든 정사(正史)이며, 오늘날 남아 있는 한국 최고(最古)의 역사서다. 기전체 — 본기·연표·지·열전으로 나눈 중국식 정사 체제를 따랐고, 사료를 엄격히 골랐으며, 문장은 단정하다. 역사서로서 갖춰야 할 격식을 모두 갖춘 책이다.
문제는 그 격식이 무엇을 걸러냈느냐다.
『삼국사기』에는 단군이 나오지 않는다. 고조선 자체가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이 책은 삼국의 건국부터 시작한다. 김부식에게 신뢰할 만한 역사란 문헌으로 확인되는 것이었고, 고조선은 그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
건국 신화도 최소한만 남겼다. 주몽이 알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는 실려 있지만 간결하게 처리되고, 곳곳에 "괴이해서 믿기 어렵다"는 취지의 논평이 붙는다. 불교 관련 기록은 대폭 줄었다. 향가는 한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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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흔한 오해를 하나 걷어내자. 김부식이 사대주의자여서 우리 역사를 축소했다는 식의 비난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그는 12세기 고려의 유학자였고, 그 시대 동아시아의 지식인이 공유하던 역사 서술의 표준을 따랐다. 그 표준에서 신이한 이야기는 사료가 아니라 잡설이었다. 게다가 그는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을 진압한 인물이다 — 고구려 계승을 내세우며 금나라 정벌을 주장한 세력을 꺾은 쪽에 서 있었다. 그의 역사관에는 정치적 입장이 분명히 섞여 있다.
동시에 이 점도 사실이다. 『삼국사기』가 없었다면 우리는 삼국의 연대와 왕계와 제도를 거의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신라 김대문의 『화랑세기』, 고구려의 『유기』와 『신집』 — 김부식이 참고했다고 밝힌 옛 문헌들은 전부 사라졌다. 그가 남긴 것이 그 문헌들의 마지막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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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김부식이 걸러낸 자리에, 백 년 넘게 지난 뒤 다른 사람이 손을 넣었다.
'유사(遺事)'라는 말은 남겨진 일, 빠진 이야기를 뜻한다. 제목부터가 『삼국사기』를 전제로 한 것이다. 정사가 다 적지 않았거나 아예 버린 것들을 줍겠다는 선언이다.
실제로 이 책의 성격은 정사와 완전히 다르다.
체제부터 자유롭다. 기전체도 편년체도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기사본말체에 가깝다. 5권으로 나뉘어 있지만 그 구분은 내용이 아니라 분량에 따른 편의적인 것이다. 9개 편목(왕력·기이·흥법·탑상·의해·신주·감통·피은·효선)이 실질적인 분류인데, 이것도 저자의 관심을 따라 만들어진 틀이다.
사료를 고르는 기준도 다르다. 일연은 절에 전해 오는 기록, 비석에 새겨진 글, 마을에서 도는 이야기, 중국 문헌, 그리고 자기가 직접 가서 본 것까지 가리지 않고 끌어온다. 출처를 밝히는 데는 오히려 성실하다 —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향전(鄕傳)에는」, 「당나라 승전에는」 하는 식으로 어디서 가져왔는지 적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판본이 서로 다르면 다르다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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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남은 것들을 세어보자.
단군신화의 최초 기록이 여기 있다. 향가 14수가 여기 있다 — 신라인이 자기 말로 남긴 노래가 오늘날 25수쯤 전하는데, 그중 14수가 이 책 하나에 실려 있다. 나머지 11수는 『균여전』에 있다. 이 두 책이 없었다면 우리는 신라 말이 어떤 소리였는지 짐작조차 못 했을 것이다.
가락국기가 여기 있다. 가야의 건국과 왕계를 이만큼 전하는 문헌이 달리 없다. 향찰과 이두로 표기된 글, 고대의 지명과 관직명, 사라진 절과 탑의 위치, 불교가 들어오던 시기의 정황 — 고대사 연구자들이 이 책을 놓지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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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책의 차이를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다.
『삼국사기』는 국가가 무엇을 했는지 적었다. 왕이 즉위하고 전쟁이 나고 사신이 오갔다. 『삼국유사』는 사람들이 무엇을 믿었는지 적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와 알에서 나온 자, 죽은 뒤 용이 된 왕과 하늘로 올라간 여종, 꿈에서 한평생을 산 승려.
어느 쪽이 더 정확한 역사인가 하는 물음은 사실 잘못 세워진 질문이다. 두 책은 다른 것을 기록하려 했다. 왕의 즉위 연도를 알고 싶으면 『삼국사기』를 봐야 하고, 그 시대 사람들의 머릿속을 알고 싶으면 『삼국유사』를 봐야 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김부식은 국가의 명으로 썼고, 일연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썼다. 그리고 아무도 시키지 않은 그 책이, 700년 뒤 우리가 고대를 상상할 때 쓰는 거의 모든 재료를 담고 있다.
이제 그 이야기들을 하나씩 읽어보자. 처음은 물론, 곰이 사람이 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