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의 생애는 몽골 침략기와 정확히 겹친다. 1206년에 태어나 1289년에 죽었으니, 그가 스물다섯이던 1231년에 몽골의 1차 침입이 시작됐고, 쉰넷이던 1259년에 고려가 강화했다. 인생의 한복판 30년이 전쟁이었다.
출생지는 장산군(章山郡),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이다. 속명은 김견명(金見明), 자는 회연(晦然)이었고 나중에 일연으로 고쳤다. 향리 가문 출신 — 중앙 귀족은 아니지만 지방에서는 행세하는 집안이었다.
아홉 살에 출가했다. 전라도 해양(海陽, 지금의 광주)의 무량사에 들어가 공부했고, 열넷에 설악산 진전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이 진전사라는 절이 그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와 신라에 남종선(南宗禪)을 처음 전한 도의(道義) 선사가 만년에 은거한 곳이다. 도의는 선종 구산문 중 가지산파의 개조로 받들어졌으니, 일연은 처음부터 가지산파 선승으로 출발한 셈이다.
스물둘이던 1227년, 승과에 응시해 상상과(上上科) — 장원으로 급제했다. 이후 삼중대사, 선사, 대선사를 차례로 거쳤다. 승려로서 오를 수 있는 계단을 하나도 건너뛰지 않고 다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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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대목이 하나 있다. 1268년, 일연은 운해사에서 열린 대장경 낙성회의 맹주를 맡았다.
이 대장경이 무엇인가. 1232년 몽골군이 대구 부인사에 있던 초조대장경 판목을 불태우자, 고려는 강화도에서 다시 새기기 시작했다. 16년에 걸쳐 8만여 장을 새긴 그것이 오늘날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이다. 부처의 힘으로 몽골을 물리치겠다는 발원으로 시작된 국가적 사업이었고, 실제로 몽골은 물러가지 않았지만 판목은 남았다.
그 완성을 기념하는 법회에서 전국의 고승 백 명을 모아놓고 주재한 사람이 일연이다. 마흔 살 넘게 전쟁을 겪은 승려가, 전쟁을 이기려고 만든 경전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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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7년부터 1281년까지, 일연은 청도 운문사에 머물렀다. 『삼국유사』의 주요 부분이 이 시기에 집필된 것으로 추정된다.
추정의 근거가 흥미롭다. 「왕력」편은 중국 왕조와 삼국의 연대를 나란히 놓은 연표인데, 그 끝에 기록된 중국 왕조가 남송이고 "대송(大宋)"이라 적혀 있다. 원(元)은 나오지 않는다. 남송이 완전히 멸망한 것이 1279년이니, 적어도 이 부분은 송이 아직 존재하던 시기에 정리됐다는 뜻이 된다.
왜 이런 정황 증거가 필요한가. 이 책 어디에도 저술 연대가 적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연이 썼다는 사실조차 권5 첫머리의 한 줄 — "국존조계종가지산하인각사주지원경충조대선사일연찬(國尊曹溪宗迦智山下麟角寺住持圓鏡冲照大禪師一然撰)" — 로만 확인된다. 그마저도 인각사 주지 시절의 직함이라, 권5는 만년에 정리했다는 단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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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년, 일연은 경주로 갔다. 일본 원정을 독려하러 온 충렬왕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거기서 불타버린 황룡사를 보았다.
이 답사의 흔적이 책 곳곳에 남아 있다. 일연은 직접 현장에 가서 확인한 것을 자주 적는다. 어느 절의 비석이 지금도 서 있다고, 어느 탑의 사리가 몇 과라고, 자기가 본 것을 쓴다. 어떤 대목에서는 여러 판본을 비교하고 어느 쪽이 옳은지 따진다. 또 어떤 대목에서는 이 기록은 의심스럽다고 대놓고 적는다.
이것이 『삼국사기』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김부식은 편찬자의 목소리를 철저히 숨겼다. 왕명으로 만든 관찬 사서였으니 당연한 태도다. 반면 일연의 책에서는 편찬자가 계속 말을 건다. 이건 내가 가서 봤다, 이건 좀 이상하다, 이 이야기는 다른 판본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 개인이 사비로 만든 책이기에 가능했던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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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3년, 일연은 국존(國尊)으로 책봉됐다. 승려가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다. 왕이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옷자락을 걷어 올린 채 절하는 예를 받았다.
그리고 그 직후,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청했다. 늙은 어머니를 봉양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왕은 허락하고 호위까지 붙여 보냈다.
아홉 살에 집을 떠난 아들이 일흔여덟에 돌아왔다. 어머니는 이듬해인 1284년, 아흔여섯에 세상을 떠났다. 함께한 시간은 한 해 남짓이었다.
조정은 군위 화산의 인각사를 수리하고 토지 100여 경을 내려 그가 머물게 했다. 어머니의 무덤에서 가까운 절이었다. 일연은 여기서 5년을 더 살다 1289년 여든넷에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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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마지막 편목이 효선(孝善)편이다. 효도와 선행에 관한 다섯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가난한 딸이 어머니를 위해 자기 몸을 팔고, 아들이 어머니를 위해 자기 아이를 묻으려 하고, 승려가 어머니를 절로 모셔와 봉양하는 이야기들이다.
출가한 승려에게 효는 원래 어려운 주제다. 집을 떠나는 것이 출가의 정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연은 자기 책의 마지막을 효 이야기로 닫았다. 그리고 실제로 만년에 국존 자리를 내려놓고 어머니에게 돌아갔다.
이 두 사실이 우연히 겹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어떤 사람이 무엇을 마지막에 놓는가는, 대개 그 사람이 오래 생각해 온 것과 관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