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삼국사기표 — "우리는 우리 역사를 모른다"

1145 12월 · 개경

1145년, 김부식은 왕명으로 편찬한 『삼국사기』 50권을 인종에게 바쳤다. 일흔의 나이였다. 책과 함께 올린 글이 「진삼국사기표(進三國史記表)」 — 이 책을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밝힌 일종의 서문이다. 김부식이라는 인물을 판단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짧은 글을 먼저 읽어야 한다. 사대주의자라는 통념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문장들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표문에서 그는 편찬의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 오늘날의 학사대부들이 중국의 경전과 역사에는 두루 통달해 상세히 말하면서, 정작 우리나라의 일에 이르러서는 그 시말을 망연히 알지 못하니 통탄할 일이다. 그러니 우리 삼국의 역사를 제대로 갖춘 역사서로 세워, 임금과 신하의 선악과 나라의 흥망을 후세에 권계(勸戒)로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만 알고 제 역사를 모르는 지식인 사회에 대한 이 개탄 — 이것은 사대주의자의 문장이 아니라 자국사 정립의 선언에 가깝다. 김부식을 읽는 일이 간단치 않은 이유가 여기서 시작된다.

편찬의 방식도 기록해 둘 가치가 있다. 김부식과 여덟 명의 편사관은 이미 존재하던 『구삼국사(舊三國史)』 등 국내 전승과 중국의 여러 사서를 대조하며 작업했다. 국내 기록과 중국 기록이 어긋나면 어느 쪽을 취했는지 밝히기도 했고, 믿기 어려운 이야기는 "괴이하여 싣지 않는다"며 걷어냈다. 유교적 합리주의의 자로 사료를 재단한 것이다 — 이 재단 덕분에 삼국사기는 연대와 사실 관계가 정연한 정사가 되었고, 같은 재단 탓에 단군과 향가와 수많은 설화가 책 바깥으로 밀려났다. 백여 년 뒤 일연이 삼국유사에서 주워 담은 것이 바로 그 밀려난 것들이다.

그리고 하나 더 — 삼국사기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김부식이 참조한 『구삼국사』는 이후 소실되어 전하지 않는다. 고구려·백제·신라 자신의 기록도 마찬가지다. 즉 삼국사기는 삼국의 역사가 소실되기 직전에 쳐진 마지막 그물이었다. 어제까지 고대 지도의 왕대 연표에서 우리가 쓴 모든 재위 연대가 이 책의 기년이다. 우리는 이 책을 비판하면서도 이 책 위에 서 있다 — 삼국사기를 읽는 일의 근본적인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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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삼국사기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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