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10월, 브뤼셀에서 열린 제5차 솔베이 회의의 주제는 "전자와 광자" — 갓 태어난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였다. 참석자 29명 가운데 17명이 노벨상 수상자(당시 또는 이후)였던 이 회의의 단체 사진은 "물리학 역사상 가장 지적인 사진"으로 불린다. 앞줄 중앙에 아인슈타인, 그 곁에 마리 퀴리와 플랑크와 로런츠, 뒷줄에 하이젠베르크와 파울리, 그리고 보어와 슈뢰딩거와 디랙과 보른. 공식 일정보다 유명해진 것은 호텔 조찬장에서 벌어진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논쟁이었다. 아침마다 아인슈타인은 불확정성 원리를 무너뜨릴 사고실험을 하나씩 고안해 내밀었고, 보어는 하루 종일 고민한 끝에 저녁이면 그 허점을 찾아 반박했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항변에 보어가 "아인슈타인, 신더러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시오"라고 받아쳤다는 일화가 이 논쟁을 상징한다. 대결은 1930년 제6차 회의까지 이어졌다 — 아인슈타인이 내민 "빛 상자" 사고실험을 보어가 다름 아닌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사용해 반박한 장면은 논쟁의 절정으로 꼽힌다. 승부는 보어의 판정승으로 기울었지만 아인슈타인은 승복하지 않았고, 이 위대한 불복이 8년 뒤 EPR 논문으로, 그리고 반세기 뒤 양자정보과학이라는 새 학문으로 이어진다. 같은 해 조선에서는 좌우가 손을 잡은 신간회가 창립되고 있었다 — 브뤼셀의 물리학자들이 실재의 본성을 놓고 다투던 그 가을의 이야기다.
제5차 솔베이 회의 —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출처
- [단행본] 양자혁명: 양자물리학 100년사
- [단행본] 불확정성: 양자물리학 혁명의 순간
- [기록보존소] International Solvay Institutes — 1927 Conference
이 글은 양자역학 100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