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은 한 사람의 발명품이 아니다. 하이젠베르크의 착상을 행렬이라는 수학으로 완성한 것은 괴팅겐의 스승 막스 보른과 동료 파스쿠알 요르단이었고, 1926년 보른은 여기에 가장 심오한 한 걸음을 보탠다 — 슈뢰딩거의 파동함수는 실재하는 물결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입자가 발견될 확률"을 말해준다는 확률 해석이다. 자연의 근본 법칙이 확정된 미래가 아니라 확률만을 말해준다는 이 선언이야말로 아인슈타인이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며 평생 거부한 지점이었다. 보른의 이 업적은 오랫동안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1954년에야 노벨상으로 보상받는다. 한편 빈 출신의 독설가 볼프강 파울리는 1925년 배타원리 — 한 원자 안에서 두 전자는 같은 상태에 있을 수 없다 — 를 세워 주기율표가 왜 그런 모양인지, 물질이 왜 붕괴하지 않고 버티는지를 설명했고, 케임브리지의 과묵한 폴 디랙은 1928년 양자역학과 특수상대성이론을 결합한 디랙 방정식에서 반물질의 존재를 순수하게 수학으로 예측해냈다 — 4년 뒤 우주선(宇宙線) 사진 속에서 양전자가 실제로 발견된다. 1920년대 중반의 이 몇 해 동안, 20대의 젊은이들이 괴팅겐·코펜하겐·케임브리지를 오가며 물리학을 통째로 다시 썼다. 사람들은 이 시기를 "소년 물리학(Knabenphysik)의 시대"라 불렀다.
보른·파울리·디랙 — 확률의 물리학과 괴팅겐의 젊은 천재들
출처
- [단행본] 양자혁명: 양자물리학 100년사
- [단행본] 퀀텀스토리: 양자역학 100년의 결정적 순간들
- [기록보존소] The Nobel Prize in Physics 1954 — Max Born
이 글은 양자역학 100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