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919)

1919 · 서울 탑골공원 · 제암리 · 전국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만세 시위는 두 달 만에 한반도 전역과 해외로 번졌다. 무기를 들지 않은 시위대에 일제는 총검으로 답했고, 제암리에서는 교회에 주민을 가두고 불을 질렀다.

【규모】 사망 7,509명(박은식 『한국독립운동지혈사』) — 일제의 공식 집계는 이보다 훨씬 적으며, 죽인 쪽과 죽은 쪽의 셈이 달랐다는 사실 자체가 기록 대상이다.

【기억의 현재】 1949년 국경일로 지정되었고,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한다.

【헌사】 맨손으로 만세를 부르다 희생되신 분들께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죽인 쪽과 죽은 쪽의 셈이 달랐던 역사를, 우리는 죽은 쪽의 이름으로 기억합니다.

출처

관련 콘텐츠

이 글은 기억의 뜰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기억의 뜰 분포도에서 이 명패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