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듬해 가을, 식량난과 미군정의 강압적 미곡 수집에 항의하던 대구 시민들에게 경찰이 발포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시위와 진압, 보복이 뒤엉킨 혼란 속에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규모】 사망자는 수백 명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집계는 없다(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기억의 현재】 2010년 진실화해위가 진실규명을 결정하고 국가의 사과를 권고했다 — 사건 발생 64년 만이다.
【헌사】 해방 공간의 혼란 속에서 공권력의 총격과 보복으로 희생되신 분들을 애도하며, 60년 만에야 국가 기록에 오른 그 이름들을 여기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