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의 가치를 정리해 보자. 여러 층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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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료로서**
가장 기본적인 가치다.
472년간의 연속적인 국가 기록이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다. 전쟁이나 왕조 교체로 기록이 끊긴 사례가 세계적으로 훨씬 많다.
조선사 연구는 사실상 실록에서 시작한다. 어떤 주제를 연구하든 실록에서 관련 기사를 찾는 것이 첫 단계다.
다만 앞서 짚었듯 실록은 중앙 정부의 시야에서 쓰인 기록이다. 실록만으로 조선을 다 알 수는 없다. 개인 문집, 지방 기록, 고문서, 발굴 자료가 함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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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른 학문에서**
역사학 바깥에서도 실록이 쓰인다.
**기상·기후 연구** — 500년 치 날씨 기록이 연속적으로 남아 있다. 가뭄과 홍수, 이상 기온의 빈도를 추적해 장기 기후 변동을 연구하는 데 활용된다.
**지진 연구** — 지진 발생 기록을 정리해 한반도의 지진 활동 이력을 파악한다. 계기 관측 이전 시기의 지진 자료로는 거의 유일하다.
**천문학** — 일식·월식·혜성·객성(초신성) 기록이 있다. 실제로 조선의 관측 기록이 국제 천문학 연구에 인용된 사례가 있다.
**의학사** — 전염병의 발생과 확산, 왕실의 진료 기록이 남아 있다.
**언어학** — 한자 표기와 이두, 지명과 인명의 변화를 추적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역사서가 자연과학 연구 자료로 쓰인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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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도로서**
이 시리즈에서 계속 다뤄온 부분이다.
왕이 볼 수 없게 한 것, 죽은 뒤에 편찬하게 한 것, 여러 곳에 나눠 보관한 것 — 이런 장치들이 하나의 체계를 이룬다.
이 체계가 완벽하게 작동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무오사화가 있었고, 수정실록이 있었고, 사관이 붓을 굽힌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설계를 하고 그것을 500년 가까이 유지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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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동아시아에는 실록 전통이 있다. 중국에도 있고, 일본과 베트남에도 있다.
**중국** — 명실록과 청실록이 규모가 크다. 다만 명실록의 경우 편찬 과정에서의 개찬 문제가 지적되고, 원본 보존 상태도 조선만 못하다는 평가가 있다.
**일본** — 육국사(六國史) 등이 있으나 연속성이 조선에 못 미친다.
**베트남** — 대월사기전서 등이 있다.
조선 실록의 상대적 특징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472년의 연속성, 다른 하나는 여러 사고에 분산 보관해 원본이 여러 벌 남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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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함께 봐야 할 기록들**
조선의 기록 유산은 실록만이 아니다.
**승정원일기** — 왕의 비서실인 승정원의 일지다. 실록보다 훨씬 자세하다. 실록이 요약본이라면 승정원일기는 원자료에 가깝다. 분량이 실록의 몇 배에 이른다. 다만 인조 이전 것은 소실됐다. 2001년 세계기록유산 등재.
**일성록** —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쓴 일기에서 시작해 국왕의 일기 형식으로 정착한 기록이다. 2011년 세계기록유산 등재.
**비변사등록** — 조선 후기 최고 정책 기구의 회의록이다.
**의궤** — 국가 행사의 전 과정을 그림과 함께 기록한 것이다. 2007년 세계기록유산 등재.
이 기록들을 함께 보면 조선이 기록에 얼마나 많은 자원을 투입했는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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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남는 물음**
마지막으로 이 시리즈에서 계속 맴돌던 질문을 다시 꺼내자.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실록 하나를 만드는 데 수십 명이 몇 년씩 매달렸다. 종이와 활자와 인력이 들었다. 전쟁 직후 재정이 바닥난 상황에서도 실록을 다시 찍었다.
실용적인 이유를 대기는 어렵다. 실록은 자주 열람되지도 않았다. 사고에 넣어두고 몇 년에 한 번 꺼내 말릴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계속했다.
하나의 설명은 이렇다. 기록은 후세를 향한 것이고, 후세가 볼 것을 알기에 현재의 권력이 조심하게 된다. 실록의 효용은 읽히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데 있었다.
왕은 자기가 무엇으로 기록될지 몰랐다. 그것이 이 제도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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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서 이 시리즈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