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쓴 실록들 — 정권이 바뀌면 역사도 고쳐 썼다

1657 · 한양

조선왕조실록에는 이상한 항목들이 있다.

『선조수정실록』, 『현종개수실록』, 『숙종실록보궐정오』, 『경종수정실록』.

수정(修正), 개수(改修), 보궐정오(補闕正誤) — 이름부터가 앞서 만든 실록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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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썼나**

간단히 말하면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실록은 죽은 왕의 기록이지만, 그것을 편찬하는 것은 살아 있는 정권이다. 그리고 조선 후기는 붕당 간의 대립이 격렬했다.

어느 당파가 집권해 실록을 편찬하면, 뒤에 다른 당파가 집권했을 때 그 실록이 편파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다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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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수정실록**

『선조실록』은 광해군 때 북인 정권이 편찬했다. 1616년에 완성됐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집권했다. 서인들은 선조실록이 북인의 시각에서 쓰였다고 보았다. 특히 이이·성혼 등 서인계 인물에 대한 서술이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수정 작업이 시작됐고, 1657년(효종 8) 『선조수정실록』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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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중요한 점**

원본을 없애지 않았다.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이 나란히 남아 있다. 오늘날 우리는 둘 다 읽을 수 있다.

이것이 조선 실록 제도의 특이한 부분이다. 고쳐 쓰되 앞의 것을 폐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두 실록을 비교하면 같은 사건이 어떻게 다르게 서술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것 자체가 사료가 된다 — 정치적 입장이 역사 서술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보여주는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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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개수실록**

『현종실록』은 1677년 남인 정권이 편찬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집권하자 개수 작업이 시작됐고, 1683년 『현종개수실록』이 나왔다.

역시 두 종이 다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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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보궐정오**

조금 다른 방식도 있었다.

『숙종실록』은 1728년 완성됐는데, 편찬 과정에서 노론과 소론이 번갈아 집권하면서 서술이 엇갈렸다.

최종적으로 소론 측 견해를 반영한 부분을 따로 정리해 『숙종실록보궐정오』라는 이름으로 덧붙였다.

즉 하나의 실록 안에 두 입장이 병기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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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부정적으로 보면** — 실록의 객관성이 훼손된 사례다. 역사 기록이 정쟁의 도구가 됐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거가 다시 쓰였다.

**긍정적으로 보면** — 그럼에도 원본을 없애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기록을 폐기하는 대신 다른 버전을 만들어 나란히 두었다.

두 견해 모두 근거가 있다.

한 가지 비교해 볼 만한 것은, 앞 편에서 본 세초와 이 문제가 정반대 방향이라는 점이다.

세초에서는 근거 자료를 없앴다. 수정실록에서는 마음에 안 드는 최종본을 그대로 두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없앨 것인가에 대한 조선의 기준은 우리와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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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들은 어떻게 다루나**

오늘날 조선사 연구에서 이 문제는 실무적인 방식으로 다뤄진다.

같은 사건에 대해 원본과 수정본을 모두 확인하고, 서술의 차이를 따지고, 어느 쪽이 어떤 입장에서 쓰였는지를 감안해 판단한다.

어느 한쪽이 진실이고 다른 쪽이 거짓이라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두 기록이 다르다는 사실 자체가 그 시대의 정치를 보여주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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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실록들**

실록 편찬은 조선 말까지 이어졌다.

『철종실록』이 1865년 완성됐다. 통상 조선왕조실록이라 하면 여기까지를 가리킨다.

『고종실록』과 『순종실록』도 있다. 그런데 이 둘은 일제강점기인 1927~1935년에 조선총독부의 관리 아래 편찬됐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두 실록을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위상으로 다루지 않는다. 편찬 주체가 일본이었고, 서술에 일제의 시각이 개입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도 태조부터 철종까지의 실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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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을 다시 쓴 사람들은 자기들이 진실을 바로잡는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고쳐 쓴 기록 옆에, 그들이 틀렸다고 한 원래 기록이 나란히 남아 있다.

지금 우리는 둘 다 읽는다.

출처

이 글은 조선왕조실록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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