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정치사를 펼치면 이름부터 벽이 된다. 훈구와 사림, 동인과 서인, 남인과 북인, 대북과 소북, 노론과 소론, 시파와 벽파. 3백 년 동안 갈라지고 합쳐지기를 반복한 이 이름들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책을 덮는다. 이 시리즈는 그 계보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줄로 세워보려는 시도다.
그런데 계보를 세우기 전에 정해야 할 것이 있다. 이 이야기를 어떤 태도로 읽을 것인가.
한국 근현대사에서 붕당만큼 오래, 그리고 의도적으로 왜곡된 주제가 드물다. 1907년 일본인 학자 시데하라 다이라는 한국정쟁지를 펴내며 조선 정치사를 당파성으로 규정했다. 한국인은 정치적으로 서로 싸우기를 좋아하는 민족성을 가져 망국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당파성론이며, 국권 탈취를 정당화하는 식민사관의 한 축이었다.
그렇다면 이 시리즈는 붕당을 변호하는 글인가. 아니다. 그것이 이 시리즈의 첫 번째 기준이다.
붕당에 대한 비판은 일본인이 발명한 것이 아니다. 조선 사람들이 이미 하고 있었다. 실학자 이익은 붕당론에서 당쟁의 원인을 관직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라고 못박았다.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그 자리를 원하는 사람은 계속 늘어나니 싸움이 그치지 않는다는, 냉정한 제도 분석이었다. 구한말의 유생 황현은 오하기문에서 옛날의 붕당은 한 세대에 그쳤는데 지금의 붕당은 3백 년을 끌어오면서 문벌을 따지는 비루한 풍습까지 가중시켰다고 비난했다. 조선 후기의 붕당이 변질된 것은 사실이며, 이 시리즈는 그 변질을 감추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짜 경계선은 붕당을 비판하느냐 아니냐가 아니다. 그 비판이 제도를 향하느냐, 민족성을 향하느냐다.
이익은 자리는 적고 사람은 많다고 말했다. 이것은 어느 사회에나 적용되는 구조 분석이다. 시데하라는 조선인은 원래 싸우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특정 민족의 본성을 규정하는 인종론이다. 앞의 것은 제도를 고치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고, 뒤의 것은 피가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둘을 뭉뚱그리는 순간, 조선의 자기반성이 식민지배의 근거로 둔갑한다. 실제로 시데하라가 한 일이 정확히 그것이었다.
두 번째 기준은 판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시리즈는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옳았는지 남인이 옳았는지 판결하지 않는다. 대신 각 세력의 주장을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최선의 형태로 나란히 놓고, 마지막에 묻는다. 나였다면 어느 쪽에 섰겠는가.
이것은 회피가 아니라 방법이다. 3백 년 전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다툰 문제에 오늘의 잣대로 점수를 매기는 것은 쉽지만 배울 것이 없다. 반면 그 자리에 서 보는 일은 어렵고, 어려운 만큼 남는다. 상복을 1년 입느냐 3년 입느냐가 왜 중요했는지는 알고 나면 아주 현대적인 질문이 된다. 왕은 사대부와 같은 규칙을 따르는가, 왕이기에 다른 규칙을 따르는가. 권력자를 일반인과 같은 법으로 다룰 것인가 아닌가. 이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세 번째 기준은 계보를 끝까지 따라간다는 것이다. 무오사화(1498)에서 시작해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1804)까지, 갈라진 지점과 합쳐진 지점을 하나도 건너뛰지 않는다. 왜 노론과 소론이 갈렸는지 알고 싶으면 스승과 제자가 편지로 절교하는 장면까지 내려가야 하고, 사도세자가 왜 죽었는지 알고 싶으면 그 40년 전 경종의 즉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봐야 한다.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다. 잘라내거나, 순서대로 세우거나. 이 시리즈는 뒤쪽을 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