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올리브나무 아래서

1897 · 예루살렘 · 가자

예루살렘 언덕에는 수령이 천 년을 넘는다고 전해지는 올리브나무들이 있다. 올리브나무는 베어도 뿌리에서 다시 순이 돋고, 줄기의 속이 다 비어도 가장자리의 산 조직만으로 수백 년을 더 산다. 그래서 이 나무는 지중해 동쪽 연안에서 오래 산 모든 민족에게 각별한 나무였다 — 유대인의 성서에도, 팔레스타인 농민의 밭에도, 이 땅을 지나간 모든 제국의 기록에도 올리브나무가 있다. 만약 나무가 기억을 저장한다면, 이 땅의 올리브나무들은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 다투어진 물음 하나를 통째로 담고 있을 것이다. 이 땅은 누구의 것인가.

이 시리즈는 그 물음의 최근 100여 년을 따라간다. 1897년 스위스 바젤의 회의장에서 시작해, 한 땅을 두고 겹쳐진 세 개의 약속, 위임통치 30년, 1947년의 분할안, 1948년 — 한쪽에게는 건국이고 다른 쪽에게는 나크바인 해 — 를 지나, 점령과 인티파다와 오슬로의 짧은 희망을 거쳐, 2023년 10월 7일과 그 후의 가자까지. 우리는 이 이야기를 어느 한쪽의 서사로 쓰지 않으려 한다. 이 충돌의 비극은 악당과 피해자의 구도로 요약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절멸의 위협을 피해 온 사람들과, 수백 년 살아온 땅에서 밀려난 사람들 — 두 개의 정당한 절박함이 같은 땅 위에서 충돌했고, 그 사이에 제국들의 계산이 놓여 있었다.

원칙을 밝혀둔다. 사망자 수는 집계한 주체를 함께 적는다. 다투어지는 대목은 다투어진다고 적는다. 진행 중인 일에 대해서는 전망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이 땅에서 벌어진 일을 종교 전쟁으로 단순화하지 않는다 — 유대교와 이슬람은 이 이야기의 배경이지 원인이 아니며, 갈등의 핵심은 언제나 땅과 주권과 귀속이라는 지극히 근대적인 물음이었다. 한국의 독자에게 이 이야기는 생각보다 가깝다. 당사자 없이 강대국이 그은 선, 위임통치라는 이름의 지배, 같은 1948년에 세워진 분단국가들, 고향을 잃고 떠도는 사람들 — 우리 현대사가 통과한 구조와 겹치는 대목이 곳곳에 있다. 다만 겹친다는 것이 같다는 뜻은 아니므로, 그 대목마다 조심스럽게 다리를 놓겠다.

이 시리즈의 제목이 된 올리브나무에 대해 한 가지 덧붙인다. ATLAS를 만드는 MKHZ 스튜디오는 이 시리즈에 앞서, 전쟁으로 폐허가 된 가자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SF 단편영화 〈THE OLIVE TREE BELOW(올리브 나무 아래서)〉를 만들었다. 골고다 언덕의 2천 년 된 올리브나무 속에 남은 파동 데이터가 복원된다면 — 이라는 상상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종교 영화가 아니라, 전쟁 속에서도 인간성은 복원될 수 있는가를 묻는 이야기다. 폐허의 아이들이 죽어가는 고양이 한 마리를 살리려 애쓰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시리즈가 기록으로 묻는 것을, 영화는 상상으로 묻는다. 함께 보아주시면 좋겠다. 이제 1897년 바젤로 간다.

출처

관련 콘텐츠

이 글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세계지도 루트에서 이 장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