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언덕 하나에 두 개의 이름이 있다

1965 · 서울·대전(국립현충원)

국립묘지법 제1조는 국립묘지의 설치 목적을 이렇게 적는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분들을 도리에 맞게 예우함으로써 애국정신을 기르고." 1955년 국군묘지로 문을 연 국립서울현충원은 1965년 국립묘지로 승격됐고, 이후 6·25 전사자를 넘어 독립유공자·순직 공무원·전직 대통령까지 예우의 폭을 넓혀왔다. 1985년에는 포화 상태의 서울을 대신할 국립대전현충원이 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 두 언덕에는, 그 설립 목적과 정면으로 어긋나는 이름들도 함께 잠들어 있다. 정부 스스로 "친일반민족행위자"라 공식 결정한 12명, 그리고 1979년 군사반란과 1980년 광주 유혈진압에 가담해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거나 재판조차 받지 않은 이들 상당수. 이들이 어떻게 국립묘지에 들어갈 수 있었는지, 그리고 왜 20년 가까이 아무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는지 — 이 시리즈는 그 물음을 정부의 공식 결정, 법원의 확정판결, 그리고 남은 제도의 공백이라는 세 겹으로 나누어 따라간다. 미리 밝혀둘 원칙이 있다. 이 시리즈는 "누가 나쁘다"를 판정하는 자리가 아니다. 이미 정부가 공식으로 결정했거나 법원이 확정판결한 사실만을 다루고, 그 사실이 왜 국립묘지 안장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는지 — 혹은 이어지지 않았는지 — 그 제도의 논리를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판단은 언제나처럼 읽는 이의 몫이다.

출처

이 글은 현충원의 역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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