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기 하편은 인류의 시원 설화로 문을 연다. 아득한 옛날, 아이사타(阿耳斯它)라는 땅에 나반(那般)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꿈에 신의 계시를 받고 천하(天河)를 건너 아만(阿曼)이라는 여인을 만난다. 두 사람은 혼례를 올렸고, 그 자손이 아홉 갈래(九桓)의 겨레를 이루었다 — 환단고기가 전하는 인류 최초의 남녀 이야기다. 성경에 아담과 하와가 있다면 이 책에는 나반과 아만이 있는 셈인데, 이름부터 흥미롭다. 재야 쪽 해석은 나반을 '나의 반쪽' 혹은 '아버지(아반→아버지)'의 고형으로, 아만을 '어머니(어머니의 고형 어마/암마)'로 읽는다. 최초의 아버지와 최초의 어머니라는 뜻이 이름에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아이사타의 위치로는 바이칼 호수 일대가 자주 지목된다 — 시베리아 바이칼 인근 원주민(부랴트족 등)과 한국인의 유전적 근연성을 근거로 대는 해석인데, 바이칼 일대가 동북아시아인의 주요 이동 경로였다는 것 자체는 유전학계에서도 논의되는 주제지만, 그것이 곧 아이사타=바이칼의 증명은 아니라는 점은 구분해두자. 삼성기 하편은 이어서 인류가 환경에 따라 다섯 색의 겨레(황·백·적·청·흑)로 나뉘었다는 오색인종설을 기록하고, 앞 편에서 예고한 환국 12연방의 이름을 남긴다. 이 목록에서 후대의 상상력을 가장 강하게 자극한 이름이 둘 있다. 열한 번째 선비국(鮮卑國) — 위진남북조 시대를 뒤흔든 유목민족 선비족을 곧장 연상시키는 이름이고, 재야 일각에서는 시베리아라는 지명 자체가 '선비의 땅'에서 왔다는 설을 편다(주류 어원학에서는 시베리아의 어원을 시비르 칸국 등에서 찾으며, 선비 기원설은 정설이 아니다). 그리고 열두 번째, 수밀이국(須密爾國)이다. 수밀이 — 이 발음에서 많은 이들이 수메르(Sumer)를 떠올린다.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 불리는 메소포타미아의 그 수메르다. 옹호론이 여기에 정황을 쌓는다. 수메르어는 주변 셈어족·인도유럽어족과 계통이 다른 교착어로, 한국어처럼 어간에 조사가 붙고 어순이 주어-목적어-동사(SOV)다. 수메르인들은 스스로를 '검은 머리 사람들'이라 불렀고, 자신들이 동방에서 왔다는 전승을 남겼다. 상투와 씨름을 연상시키는 유물, 지구라트와 제천단의 유사성 같은 문화 코드도 거론된다. 그리고 결정적 논거로 이것을 든다 — 수메르 문명이 서구 고고학에 의해 발굴·명명된 것은 19세기 후반인데, 15세기의 이맥(태백일사)이나 그 이전 문헌이 어떻게 그 이름을 알았겠느냐는 것이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위서론의 시각에서는 인과가 정반대다 — 환단고기의 실제 성립을 20세기로 보면, 편찬자가 당시 이미 소개돼 있던 수메르 관련 지식을 반영해 수밀이국이라는 이름을 넣었다고 설명하는 쪽이 훨씬 간명하다는 것이다(이 논리 구조는 위서 논쟁 전체를 관통하므로 12~14편에서 다시 본다). 언어 유사성 논거에 대해서도, 교착어와 SOV 어순은 세계 언어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특징이라 계통적 증거로는 약하다는 것이 언어학계의 일반적 평가다. 요컨대 수밀이국 문제는 이 책의 매력과 위험을 동시에 압축한 표본이다 — 사실이라면 세계사를 다시 써야 할 기록이고, 위서라면 편찬 시점을 역으로 추정하게 해주는 단서가 된다. 같은 문장이 양쪽 모두에게 증거로 쓰이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삼성기가 그리는 그림 자체는 기억해둘 만하다. 인류가 한 곳에서 나와 끊임없이 이동하며 갈래를 이루었다는 것 — 이 큰 그림만큼은 현대 인류학의 대이동 서사와 방향이 겹친다. 그리고 그 이동의 끝자락에서, 한 무리가 동쪽으로 향한다. 다음 편의 주인공, 환웅의 이야기다.
삼성기 (2) — 나반과 아만, 그리고 수밀이국이라는 수수께끼
출처
- [단행본] 환단고기 삼성기 하편·태백일사 환국본기
이 글은 환단고기, 무엇을 말하는가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