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해례본 ⑧ 정인지 서 —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아침에,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이면"

1446 9월 · 한양 경복궁

원문

有天地自然之聲,則必有天地自然之文。所以古人因聲制字,以通萬物之情,以載三才之道,而後世不能易也。然四方風𡈽區別,聲氣亦隨而異焉。蓋外國之語,有其聲而無其字。假中國文字以通其用,是猶枘鑿之鉏鋙也,豈能達而無礙乎。要皆各隨所處而安,不可强之使同也。吾東方禮樂文章,侔擬華夏。但方言俚語,不與之同。學書者患其旨趣之難曉,治獄者病其曲折之難通。昔新羅薛聡,始作吏讀,官府民間,至今行之。然皆假字而用,或澁或窒,非但鄙陋無稽而已,至於言語之間,則不能達其萬一焉,癸亥冬。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略揭例義以示之,名曰訓民正音。象形而字倣古篆,因聲而音叶七調。三極之義。二氣之妙。莫不該括。以二十八字而轉換無窮,簡而要,精而通。故智者不終朝而㑹,愚者可浹旬而學。以是解書,可以知其義。以是聽訟,可以得其情。字韻則清濁之能辨,樂歌則律呂之克諧。無所用而不備,無所往而不達。雖風聲鶴戾,雞鳴狗吠,皆可得而書矣,遂命詳加解釋,以喩諸人。於是,與集賢殿應敎,副校理彭年叔舟,修撰三問,敦寧府注簿希顔,行集賢殿副修撰善老等,謹作諸解及例,以敍其梗槩。庶使觀者不師而自悟。若其淵源精義之妙,則非等之所能彂揮也。恭惟我殿下,天縱之聖,制度施為超越百王。正音之作,無所祖述,而成於自然。豈以其至理之無所不在,而非人為之私也。夫東方有國,不為不久,而開物成務之大智,蓋有待於今日也欤。正統十一年九月上澣。資憲大夫禮曺判書集賢殿大提學知春秋館事世子右賓客臣鄭麟趾拜手稽首謹書

해례본을 맺는 정인지(鄭麟趾)의 서(序) 전문. 집현전 학자 8인(정인지·최항·박팽년·신숙주·성삼문·강희안·이개·이선로) 중 정인지가 대표로 쓴 발문으로, 창제 배경과 해례 작업에 참여한 학자들의 이름을 밝히고 세종을 기린다.

현대어로 읽기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글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소리에 따라 글자를 만들어 만물의 뜻을 통하게 하고 삼재(三才)의 도리를 실었으니, 후세 사람이 능히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사방의 풍토가 구별되매 성기(聲氣)도 따라서 다르다. 대개 외국의 말은 그 소리는 있으나 그 글자가 없어, 중국의 문자를 빌려서 통용하니 이는 마치 둥근 자루가 네모난 구멍에 들어맞지 않는 것과 같으니 어찌 능히 통달하여 막힘이 없겠는가. 요컨대 모두 각기 처한 바에 따라 편안해야지, 억지로 같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동방의 예악과 문장이 중화와 견줄 만하나, 다만 방언과 속된 말이 중국과 같지 않다. 그리하여 글을 배우는 자는 그 뜻을 깨닫기 어려움을 근심하고, 옥사를 다스리는 자는 그 곡절을 통하기 어려움을 괴로워했다. 옛날 신라의 설총이 처음으로 이두를 만들어 관청과 민간에서 지금까지 쓰고 있으나, 모두 한자를 빌려 쓰기 때문에 혹은 어렵고 혹은 막혀서, 비루하고 근거 없을 뿐만 아니라 언어 사이에서는 그 만분의 일도 통할 수 없었다. 계해년(1443)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 스물여덟 자를 창제하시고 예의를 간략히 들어 보이시며 이름하여 훈민정음이라 하셨다. 모양을 본떠 글자는 옛 전서를 모방하고, 소리에 따라 음은 칠조(七調)에 맞으니, 삼재의 뜻과 음양의 묘함이 다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다. 스물여덟 자로 전환이 무궁하여, 간략하면서도 요긴하고 정밀하면서도 통한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사람은 아침이 끝나기 전에 깨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이로써 글을 풀면 그 뜻을 알 수 있고, 이로써 송사를 들으면 그 실정을 얻을 수 있다. 자운은 청탁을 능히 분별할 수 있고, 악가는 율려가 능히 조화될 수 있다. 쓰는 데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고 가는 곳마다 통하지 않음이 없어, 비록 바람 소리, 학 울음, 닭 울음, 개 짖는 소리라도 다 표기할 수 있다. 마침내 자세히 풀이를 더하여 여러 사람을 깨우치라 명하시니, 이에 신(臣)이 집현전 응교 최항, 부교리 박팽년·신숙주, 수찬 성삼문, 돈녕부 주부 강희안, 행 집현전 부수찬 이개·이선로 등과 더불어 삼가 여러 해설과 예시를 지어 그 대강을 서술하였으니,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 없이도 스스로 깨우치게 하려 함이다. 그 연원의 정밀한 뜻의 묘함으로 말하면 신 등이 능히 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삼가 생각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하늘이 내신 성인으로, 제도와 시행이 백왕(百王)을 뛰어넘으셨다. 정음을 지으심은 어느 것도 본받은 바 없이 자연히 이루어졌으니, 어찌 그 지극한 이치가 있지 않은 곳이 없어서 사람의 사사로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지 않겠는가. 무릇 동방에 나라가 있은 지 오래되지 않은 것이 아니나, 사물을 열고 일을 이루는 큰 지혜는 대개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로다. 정통 11년(1446) 9월 상순. 자헌대부 예조판서 집현전 대제학 지춘추관사 세자우빈객 신(臣) 정인지, 두 손 모아 머리 숙여 삼가 쓰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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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훈민정음 해례본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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