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율성론과 정체성론 — 식민사관의 두 기둥 해부

1904 · 도쿄·경성

주장

일본 관학이 세운 식민사관의 뼈대는 두 이론이다. 정체성론(停滯性論)은 1904년 후쿠다 도쿠조가 "조선에는 봉건제가 없었다"고 주장한 데서 출발해, 조선 사회가 내적 발전 동력 없이 고대 수준에 머물러 있으므로 스스로 근대화할 수 없다는 논리로 발전했다. 타율성론(他律性論)은 반도라는 지리적 조건 탓에 한국사가 늘 대륙과 해양 세력의 힘에 의해 타율적으로 움직여왔다는 주장으로, 만주사의 부속으로 한국사를 보는 만선사관과 "반도적 성격론"으로 정교화됐다. 두 이론을 합치면 결론은 하나다 — 스스로 설 수도, 발전할 수도 없는 민족이니 일본의 지배는 침략이 아니라 시혜라는 것.

반박

두 이론은 학문의 외피를 쓴 통치 논리였고, 실증적으로도 무너졌다. 정체성론부터 보면, "봉건제 결여"는 서유럽의 발전 경로를 인류 보편의 잣대로 놓은 단선론적 착시다 — 조선 후기 연구가 축적되면서 이앙법 확산과 농업 생산력 증대, 장시와 상품화폐경제의 성장, 공인·사상의 활동, 신분제의 동요, 실학의 등장 등 사회 내부의 활발한 변화가 실증됐고, "고대 수준의 정체"라는 규정 자체가 사료가 아니라 결론을 먼저 정해놓은 서술임이 드러났다. 타율성론은 지리결정론이라는 점에서 애초에 학문이 되기 어렵다 — 같은 반도인 이탈리아와 이베리아에서 로마와 대항해시대가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반도라서 종속적"이라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으며, 거란·여진·몽골·왜의 침입을 격퇴하거나 극복해온 역사, 훈민정음과 금속활자 같은 독자적 문화 창조는 이 틀로 설명되지 않는다. 결정적인 것은 두 이론의 출생지다 — 이것은 사료에서 귀납된 학설이 아니라 조선사편수회와 경성제국대학이라는 통치기구를 통해 "지배를 정당화하라"는 목적에 맞춰 연역된 논리였다. 해방 후 한국 사학계는 내재적 발전론으로 이 틀을 극복해왔지만, 이 시리즈 2편에서 다룬 식민지 근대화론이 "스스로 발전할 수 없었다"는 정체성론의 21세기 버전이라는 지적이 보여주듯, 두 기둥은 이름만 바꿔 여전히 되돌아온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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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역사왜곡에 맞서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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