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의 귀환, 그리고 3천 년 뒤 먼지 속에서 되살아나다

-2700 · 우루크 / 니네베

우트나피쉬팀의 힌트를 따라 길가메시는 바다 깊이 잠수해 마침내 젊음을 되찾아주는 풀을 손에 넣는다. 영생은 아니지만, 적어도 늙지 않는 방법은 얻은 셈이었다. 그러나 우루크로 돌아가는 길, 그는 연못에서 잠시 몸을 씻는 사이 그 풀을 뱀에게 빼앗기고 만다. 뱀은 그 자리에서 허물을 벗고 사라진다 — 뱀이 허물을 벗으며 다시 젊어지는 듯 보이는 것을 신화적으로 설명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결국 길가메시는 빈손으로 우루크로 돌아온다. 영생도, 젊음도 얻지 못한 채였다. 하지만 서사시는 이것을 실패로 그리지 않는다. 성벽 앞에 선 길가메시는 자신이 세운 우루크의 튼튼한 성벽을 바라보며 깨닫는다 —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없지만, 자신이 세운 것과 남긴 이름은 살아남는다는 것을. 서사시는 그가 폭군에서 벗어나 지혜로운 왕으로 자리 잡았음을 암시하며 끝을 맺는다. 죽음을 이기려던 여정이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 이야기는 이후 오랫동안 잊혔다. 점토판은 무너진 도시의 흙더미 속에 3천 년 넘게 묻혀 있었다. 그러다 19세기 유럽 고고학자들이 아시리아 제국의 옛 수도 니네베에서 왕궁 도서관 터를 발굴하며 수만 장의 점토판을 세상에 다시 꺼냈다. 그중 한 젊은 연구원 조지 스미스가 대영박물관에 쌓여 있던 점토판을 독학으로 읽어내다가, 1872년 마침내 그 안에서 대홍수 이야기를 찾아낸다. 그의 발표는 성경 속 노아의 홍수와 놀랍도록 닮은 이야기가 그보다 오래된 문명에도 있었다는 사실로 유럽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4천 년 넘게 흙 속에 잠들어 있던 이야기가, 그렇게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때 한반도는】 길가메시의 이야기가 흙 속에 묻혀 있던 그 수천 년 동안, 한반도에서도 신석기시대가 저물고 청동기시대가 열리며 고조선이라는 이름이 역사에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조지 스미스가 니네베의 점토판을 읽어내던 1872년 무렵, 한반도는 조선 후기 고종의 시대였다. 메소포타미아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가 세상에 다시 드러난 그 순간, 지구 반대편 한반도는 근대의 문턱 앞에서 전혀 다른 격변을 앞두고 있었다 — 4천5백 년 전 우루크의 왕 이야기와, 19세기 조선의 현실은 이렇게 한 시간의 지도 위에서 조용히 마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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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길가메시 서사시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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