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투쟁은 불가능한 환상"? — 봉오동과 청산리가 이미 답했다

1920 6월 · 만주 봉오동

주장

영화는 이승만의 외교 노선을 부각하기 위해 무장독립투쟁을 "현실성 없는 환상"으로 깎아내린다. 강대국 외교만이 유일하게 실효성 있는 독립운동이었다는 구도다.

반박

외교 노선과 무장투쟁 노선의 우선순위 논쟁은 독립운동 내부에 실재했던 역사적 논쟁이고,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는가는 해석의 영역일 수 있다. 그러나 무장투쟁을 "불가능한 환상"으로 규정하는 것은 해석이 아니라 사실 부정이다. 1920년 6월 홍범도·최진동·안무의 연합부대는 봉오동에서 일본 정규군 추격대를 격파했고, 같은 해 10월 김좌진·홍범도의 연합부대는 청산리 일대 6일간의 전투에서 일본군에 대승을 거뒀다 — 식민지 민병대가 제국 정규군을 상대로 거둔, 당대 세계적으로도 드문 전과였다. 일본이 이 패배 직후 간도의 조선인 마을들을 초토화한 경신참변(간도참변)은, 역설적으로 일본이 무장투쟁을 얼마나 실질적 위협으로 여겼는지를 보여준다. 이후로도 의열단의 의열투쟁, 한국광복군의 창설과 국내진공작전 준비까지 — 무장투쟁은 외교·실력양성 노선과 함께 독립운동의 실체를 이룬 축이었다. 여러 노선이 있었기에 어느 하나가 꺾여도 운동 전체가 꺾이지 않았다. 한 노선을 세우기 위해 다른 노선을 "환상"으로 지우는 것은, 그 노선에 목숨을 바친 이들의 실재했던 전투와 죽음을 지우는 일이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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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건국전쟁」 팩트체크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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