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두 나라를 함께 바꾸다

1950 · 경기 파주 판문점

1950년 6월 전쟁이 시작되었다. 유엔 결의를 근거로 다국적군이 파병되었고 열여섯 나라가 전투 병력을 보냈다. 3년 만에 정전협정이 맺어졌고 전선은 시작 지점 부근으로 돌아왔다.

한반도가 치른 대가는 컸다. 민간인 희생이 매우 컸고, 폭격과 학살, 피난 과정의 죽음이 양쪽 모두에서 있었다. 그 진상 규명 작업은 반세기 뒤에야 본격화되었다. 이 아틀라스는 특정 수치를 확정하지 않되 그 규모를 축소하지 않는다.

정전은 평화조약이 아니라 군사적 정지였다. 70년이 넘도록 그 상태가 이어진다.

이 전쟁이 미국을 어떻게 바꿨는지도 함께 보아야 한다.

전쟁 전까지 이 나라는 전시에 동원했다가 평시에 해제하는 방식을 유지했다. 이 전쟁을 거치며 평시에도 대규모 상비군과 군수 산업을 유지하는 체제가 자리 잡았고, 군사비가 항구적으로 높은 수준에 고정되었다. 10년 뒤 한 대통령이 퇴임 연설에서 군과 산업의 결합이 민주적 통제를 벗어날 위험을 경고한다 — 그 체제를 만든 시기의 한복판에 있던 사람의 말이다.

그리고 이 전쟁으로 미군의 해외 주둔이 상시화되었다. 유럽과 동아시아에 대규모 병력이 남았고, 그 배치가 이후 반세기의 국제 질서를 뒷받침한다. 영토를 병합하지 않고도 군사적 존재를 유지하는 방식이며, 이 편의 출발 질문이 가장 구체적으로 걸리는 지점이다.

한국 쪽에서 보면 이 전쟁으로 분단이 고착되었고 동시에 안보 체제가 만들어졌다. 그 체제 안에서 한국은 오랫동안 작전통제권 문제를 안고 있었고, 그 조정 과정은 지금도 이어진다.

오스만 편에서 다룬 「형제의 나라」 서사가 시작된 자리도 여기다. 튀르키예가 여단 규모의 병력을 보냈고, 두 사회가 실제로 만난 것은 이 전쟁에서였다. 한 전쟁이 지구 반대편 두 나라의 관계를 만든 셈이다.

전쟁은 싸운 나라들을 각각 어떻게 바꾸었을까? 그리고 그 변화는 전쟁이 끝난 뒤 얼마나 오래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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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미국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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