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끝, 그리고 다음 제국

1898 · 필리핀 마닐라

1808년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점령하고 자기 형을 왕으로 앉혔다. 본국의 정통 권력이 사라지자 아메리카 각지에서 자치 기구가 세워졌고, 그것이 독립 선언으로 이어졌다. 제국의 해체는 식민지의 봉기가 아니라 본국의 붕괴에서 시작되었다.

1824년 안데스의 고원에서 벌어진 전투로 남아메리카의 독립 전쟁이 사실상 끝났다. 330년 동안 이어진 대륙의 지배가 15년 만에 무너졌다.

독립을 주도한 것은 현지에서 태어난 유럽계 상층이었다. 원주민과 혼혈, 노예 인구의 요구는 그 안에서 부차적으로 다뤄졌고, 독립 이후에도 토지와 신분의 구조는 크게 바뀌지 않은 곳이 많았다. 누구의 독립이었는가라는 물음이 여기서 시작된다. 그리고 새로 생긴 나라들의 국경선 상당수는 식민 시기의 행정 구역을 그대로 따랐다 — 제국이 물러난 자리에 그 제국의 선이 남는 일이 여기서도 반복된다.

남은 것은 쿠바와 푸에르토리코, 그리고 필리핀이었다. 1898년 쿠바의 독립 전쟁에 미국이 개입하면서 짧은 전쟁이 벌어졌고, 스페인은 남은 전부를 잃었다.

쿠바는 독립했다. 다만 미국의 개입 권한을 인정하는 조항이 헌법에 들어갔다 — 형식상의 독립과 실질적 종속이 함께 있는 상태다. 푸에르토리코와 괌과 필리핀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필리핀 사람들은 독립을 기대했다. 그들은 이미 스페인을 상대로 혁명을 진행 중이었고 공화국을 선포한 상태였다. 그러나 통치자가 바뀐 것이었고, 이어진 저항 전쟁은 3년 넘게 계속되며 큰 희생을 낳았다.

406년 만에 한 제국이 끝났고, 같은 문서로 다른 제국이 시작되었다.

같은 해 대한제국에서는 만민공동회가 열리고 있었다. 7년 뒤 을사늑약을 맞는다. 필리핀이 한 제국에서 다른 제국으로 넘어가던 그 시기에, 한반도를 둘러싼 승인도 열강 사이에서 오가고 있었다.

스페인에서는 이 해의 상실을 「재난」이라 부른다. 제국의 종료가 국가 정체성을 다시 묻는 계기가 되었고, 그 물음에서 나온 문학과 사상이 20세기 초 스페인 지식계를 이룬다.

오늘날 20개가 넘는 나라에서 이 제국의 언어가 쓰인다. 종교와 법 체계, 도시의 배치와 성씨가 그렇다. 동시에 그 언어와 함께 사라진 언어들이 있다.

제국이 남긴 것을 셀 때, 우리는 사라진 것을 어떻게 함께 세어야 할까?

관련 콘텐츠

이 글은 스페인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