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3년 겨울, 한 스페인 사제가 남해안의 왜성에 도착했다. 임진왜란 중이었고, 그는 일본군 지휘관 중 기독교로 개종한 인물의 요청으로 온 종군 신부였다. 약 1년을 머물다 돌아갔다.
기록으로 확인되는 첫 서양인의 한반도 체류다. 그가 남긴 편지에는 추위와 굶주림, 전쟁의 참상이 적혀 있다.
이 짧은 사건이 왜 이 편에 들어가는가. 세 가지를 함께 보여주기 때문이다.
첫째, 이 시기 한반도가 이미 세계적 연결망 안에 있었다는 것. 스페인 제국의 사제가 필리핀과 일본을 거쳐 조선에 왔다는 사실 자체가 그 연결망의 존재를 보여준다. 같은 시기 마닐라에는 중국 상인 수만 명이 거류하고 있었고, 아메리카의 은이 그 도시를 통과하고 있었다.
둘째, 그가 온 경로가 침략의 경로였다는 것. 그는 조선과 교류하러 온 것이 아니라 침공한 군대를 따라왔다. 만남이 언제나 대등한 조건에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셋째, 그 만남이 거의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 조선 측 기록에 그의 존재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후 조선과 스페인 사이에 관계가 이어지지도 않았다. 접촉이 있었다고 해서 관계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17세기 중반에는 네덜란드 배가 제주에 표착하고, 그중 한 사람이 억류 생활을 기록으로 남겨 유럽에 조선을 알린다. 이 역시 의도된 교류가 아니라 사고였다.
조선이 서양과 본격적으로 마주하는 것은 그로부터 200년 뒤다. 그 사이의 시간을 두고 왜 문을 닫았는가를 묻는 서술이 많지만, 물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 그때 열려 있던 문으로 들어온 것이 무엇이었는지.
접촉이 곧 교류는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만남을 관계의 시작이라 불러야 할까?